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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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제 그가 그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는, 그녀 생각을 하고 있는 그를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그녀 생각을 하고 있는 그를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 세계를 그가 떠올렸다면 거기에 어떤 진실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과학적 진실은 아니겠지만, 입증 가능한 진실은 아니겠지만, 감정적 진실은 있을 것인데, 결국 중요한 건 오직 그것뿐이다.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우리가 가진 것은 좋은 거지만 이제는 이 정도 좋은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살펴본다든가. 예를 들어 고등학교 졸업식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고, 첫 자전거의 색깔은 지워졌고, 뉴스쿨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첫 학기에 일주일에 세 번 이른 아침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을 가르치던 수업에 왔던 학생들은 어떤 것도, 이름 하나 얼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반세기 전 기차에서 본 어린 소녀는 기억이 나고, 그 이후로 수백 번이나 생각하게 되었는지. 왜 그 소녀, 말도 나누어 보지 않은 그 아이는 남고, 그 열넷 또는 열다섯 학생은 한 명도 남지 않았을까?




...가장 힘든 상황에서 궁지에 몰린 가족을 내팽개쳤다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때문에 평생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옳은 선택이냐 그른 선택이냐는 없고, 둘 다 결국에는 그른 것이 되어 버릴 옳은 선택만 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움가트너의 아버지의 경우 책임감이 자신을 위한 욕망을 이겼으며, 그 덕분에 그의 선택은 명예로운 것, 심지어 고귀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자기희생이 바보와 빈둥거리는 사기꾼 들에게 낭비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 선택은 불가피하게 원한의 원천이 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영혼에 심각한 손상을 주게 된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는 거기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어. 영화에서 딱 한 장면에 나온 배우였는데, 나중에 아무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장면이 잘려 버린 거야. 그걸 뭐라고 표현하더라? 있잖아, 누가 영화에 출연했는데 영화관에 보러 갔을 때는 나오지 않게 된 거.
  편집실 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그거야. 그 여자는 편집실 바닥에 쓰러져 죽었어.




...말할 필요도 없이, 필름 어디에서도 이리는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출발점으로, 답이 없는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게 진실인지 진실이 아닌지 확실치 않을 때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시인이 나에게 한 이야기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정보의 부재 속에서, 나는 시인을 믿는 쪽을 선택한다. 그곳에 이리가 있었건 없었건, 나는 이리를 믿는 쪽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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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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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열린책들 세계문학 194
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재혁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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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는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죄와 함께 언제라도 저울 위에 놓여 저울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지기를 매수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아주 값진 것이라고 해도 기꺼이 내주었다. 문지기는 그 모든 것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받는 것은 다만 당신이 무언가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함이오.》




... 「그 의견을 따른다면 문지기가 말하는 것은 뭐든 다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요.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은 당신 스스로 세세하게 밝히셨는데요.」 「그렇지 않소.」 사제가 말했다. 「모든 것을 다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오.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지.」 「꿀꿀한 얘기군요.」 K가 말했다. 「그러니 허위가 세계 질서가 된 거죠.」




...꺼져 가는 눈빛으로 K는 두 신사가 바로 그의 코앞에서 서로 뺨을 댄 채로 결정적인 순간을 지켜보는 모습을 보았다. 「개 같다!」 그가 말했다. 치욕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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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순간이다 - 삶이라는 타석에서 평생 지켜온 철학
김성근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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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 포스트 AI 시대, 문화물리학자의 창의성 특강
박주용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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