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최진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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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전쟁 - 패권의 역사에서 발견한 세계를 움직이는 힘의 비밀
최윤식 지음 / 더퀘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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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은 더 이상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체제 싸움이 아니다. 글로벌 절대권력 자리를 두고 벌이는 권력전쟁이 근본 원인이다. 모두가 다 ‘더 잘살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승리한 나라가 모든 것을 가지려는 탐욕이 그 뿌리다. 이 싸움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든, 나머지 나라는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것도 테러 집단의 권력욕 때문이고, 쉽게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도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끝없는 권력욕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푸틴의 탐욕스러운 권력욕이 근본 원인이다.



...함무라비 형법을 관통하는 원칙은 유명한 문구인 ‘눈에는 눈으로’라는 ‘탈리오 법칙’이다...나는 ‘눈에는 눈으로’라는 원칙에 기반한 형법 제정의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개인 간의 분쟁을 사적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이나 과잉 보복 또는 무제한 보복의 금지다. 다른 하나는...국가가 개인들에게서 폭력의 권리를 빼앗은 공식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탈리오 법칙에 기반한 형법 제정은 법과 질서의 개념을 일깨우고,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폭력’이라는 강력한 권력 획득 수단을 개인에게서 회수해 국가가 독점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함무라비가 법을 통해 폭력을 국가 소유로 종속시킨 왕이라고 본다.




....이 단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식의 어려움’이다. 폭력이 너무나 세련되게 변신하기에 일반인은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피해 역시 즉각적으로 또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으며 심리적 트라우마, 사회적 소외, 경제적 손실 등의 형태로 장기간에 걸쳐 가해진다. 직접적인 살상보다는 심리적 조작, 경제적 압박, 정보 조작 등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폭력이 세련되어지면, 야만적인 폭력보다 더 위험하고 해로워진다. 하지만 일반인은 이를 폭력으로 생각하지도 못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문명이 발전할수록 4단계의 폭력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나는 이 단계를 ‘선진국형 폭력’이라고 부른다.




...나는 대항해 시대를 유럽의 패권국가들이 새로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고대나 중세보다 더 세련된 방식으로 ‘침략자’이자 ‘약탈자’로 변신한 시대라고 본다. 포르투갈이 그 포문을 열었고,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에 이르기까지 중세 이후 근대의 유럽 제국들은 권력과 이익을 획득하는 약탈의 새로운 방법, 침략의 새로운 방법, 폭력의 새로운 방법을 고도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나는 이 시대를 ‘새로운 폭력을 발견한 시대’라고 부른다.





...미국이 ‘중동과 중국’ 또는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충분히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평상시에도 국방비로 연간 1,000조 원을 지출한다. 무력 전쟁은 ‘쩐의 전쟁’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군사력도 약해진다. 2개의 전쟁이 동시에 터지고,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 전쟁에서 모두 패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래서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절대로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전면전을 벌여서도 안 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중동전쟁으로 확대돼선 안 된다. 확전이 되더라도, 절대로 직접 개입하면 안 된다. 베트남전쟁 때처럼, 직접 수행해선 안 된다. 전쟁은 언제나 대리전으로 치러야 한다. 약세에 있는 국가와의 전쟁이라도 장기전으로 끌고 가선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외교적 신뢰가 추락하는 걸 감수하고도 미국이 철수한 이유다.





...‘화폐전쟁’은 경제전쟁의 끝판왕이다. 무역전쟁은 약탈 전략이든 무역 장벽 전략이든 느리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방식이다. 반면 화폐전쟁은 무역전쟁보다 빠르고 거세다. 충격의 여파도 무역 장벽을 능가한다. 한순간에 국가를 부도 상황까지 몰고 갈 수 있다. 화폐를 무기로 상대를 공격하는 전투 방법 중에는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하나는 상대의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상승 또는 하락시켜 이득을 보는 방법이다. 상대의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은 자국의 화폐 가치를 하락시켜 이득을 보아야 할 때 사용한다. 반대로 상대의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키는 것은 상대의 금융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 방식은 ‘환율 시장’ 공격으로 시작되고 ‘무역전쟁’ 효과를 거쳐서 종국에는 상대국의 경제 시스템을 초토화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 투자자들의 탐욕이었다. 하지만 월가 금융 용병들의 교묘한 전투 전략도 한몫했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미국의 투자 회사들은 일본에서 닛케이 주가지수 선물을 대량으로 팔아 치운 후, 그에 기반한 옵션 계약을 덴마크의 투자들에게 팔았다. 덴마크 투자자들은 그 계약을 일본 사람들에게 되팔았고, 미국 정부의 금융 용병들은 일본 주식을 시장에 내던졌다. 일본 주식 시장의 하락에 베팅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투자자들에게 옵션 계약을 매도하여 리스크를 분산하고, 유럽 시장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었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트레이딩과 헤지 전략을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금융 상품을 여러 지역의 투자자들에게 재분배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당시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파생상품 거래 전략이기도 했다. 일본 증시는 완전히 붕괴했고, 월가는 양쪽에 상품을 팔아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위기 상황에서 외국 투자자들, 특히 월가의 일부 금융기관은 저평가된 아시아 국가들의 자산을 대량으로 매입할 기회를 얻었다. 이런 상황을 일각에서는 ‘양털 깎기sheep shearing’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의 알짜 기업과 산업을 장악하고 저렴한 가격에 매입해 큰 이익을 얻는다는 의미에서다. 조지 소로스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규칙에 따라 투기 행위를 했을 뿐이다.나는 금융시장의 합법적인 참여자다. 도덕적인 기준으로 내 행동을 평가하지 말라. 이는 도덕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중국은 미래 화폐전쟁 또는 미래 기축통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장기 전략으로 대전환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디지털 법정화폐 경쟁에서 앞서 나가자, 현실 세계 제1 기축통화국인 미국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디지털 달러 현실화 시간표를 앞당기고 있다.
미국과 중국, 둘 중에 누가 이길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현재 기준, ‘디지털 법정화폐’ 또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이슈에서는 중국이 미세하나마 미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본다. 디지털 제1 기축통화국 지위 전쟁, 미·중 간 현실 세계 경제 식민지 획득 전쟁, 그리고 무한하게 확장될 가상 세계 경제 식민지 획득 전쟁에서 디지털 화폐가 강력한 무기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한다.





...미국의 샤한샤 지위와 그에 따른 화폐의 힘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제1 기축통화국 지위를 갖게 된 건 1921년부터다. 미국의 달러화는 제1 기축통화국 평균 수명을 이미 넘어섰다. 2024년 기준 미국은 104년 동안 제1 기축통화국 지위, 샤한샤 지위를 유지 중이다. 나는 미국이 앞으로 최소 30년 이상은 그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예측한다. 하지만 샤한샤 지위의 상실, 달러화 붕괴와 미국 정부의 파산 사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미래라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한다. 2개의 전쟁에 직접 뛰어들진 않았지만, 막대한 전쟁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원한 자금 규모는 1,000억 달러가 넘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만큼 달러를 더 찍어내야 한다. 그럴수록 달러 구매력이 하락해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나고, 트리핀 딜레마가 작동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출혈이 누적된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과 타이완을 두고 전면전을 벌인다면, 달러 가치 붕괴에 대한 세 번째 위기감이 고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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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크리스타 K. 토마슨 지음, 한재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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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학파와 간디도 어떤 면에선 일리가 있다. 그들 말대로 부정적인 감정을 쉽게 느낀다면 세상과 삶에 애착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걸 오웰과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에 완전히 얽매여 있고 그것에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 통제형 성인과 요새 유행하는 현대판 성인은 인간사의 혼란스러움에 휘말리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 혼란이 바로 당신의 삶이다. 그 혼란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은 인간성을 버리려고 힘쓰는 것이다.




...감정의 거친 모서리를 다듬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 또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항상 우리가 내린 선택이나 결정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정이 우리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감정이 틀리고 판단이 옳은 건 아니다. 감정은 나름의 지능이 있어 때로는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기도 한다. 그렇다면 감정이 우리말을 듣도록 훈련시키기보다는 우리가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도록 허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 놓지 못하는 까닭은 감정을 그대로 두면 그 감정이 영원히 지속될까 봐, 그 감정이 우리를 집어삼킬까 봐 또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의 일부는 감정이 우리 안에 있는 사악한 뭔가를 나타낸다는 믿음을 심어 놓은 성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은 사악한 게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그 애착의 일부일 뿐이다. 나쁜 감정은 당신을 잡아먹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나쁜 감정을 느낄 것이고 그건 결국 사라질 것이다.





...자아를 솔직하게 사랑한다는 건 자아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자아가 연약함을 느낄 때, 나쁜 감정이 찾아올 것이다. 나쁜 감정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건 우리가 나쁜 감정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며 그건 당연한 일이다. 나쁜 감정을 없애려 하거나 밀어내려 하는 건 실수다. 우리에겐 나쁜 감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삶이 의미 있는 건 삶 속에 나쁜 감정이 함께해서다. 삶에 대한 애착은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바로 흙이다. 흙이 충분히 기름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흙에는 지렁이가 가득하다.




...감정 성인이 약속하는 행복한 평화는 이런 인간적인 삶을 희생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삶을 잘 살려면 아니 그저 살아가려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인간 세상에 완전히 몰입해 비극적인 일과 기쁜 일, 이상한 일, 평범한 일과 같은 인간사의 모든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삶이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나쁜 감정도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야생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감정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우리가 그걸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분노는 당신이 무시당했거나 해를 입었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분노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급하게 분노에 대한 결론을 내리거나 분노를 다른 것으로 바꾸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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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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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뭐냐고!”라고 소리내보고 큭큭 웃었다. 그것 또한 언젠가 본 드라마 주인공을 흉내낸 것이었으므로 그는 다시 큭큭 웃었다. 그리고 자기다운 게 뭔지 생각하다 자기답게 사는 게 지겨워졌다.

...그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작고 예쁜 풍경 속으로 걸어가 그의 아내와 아기의 곁에 앉았다. 아기가 무언가를 붙잡으려 허공에 팔을 뻗어 휘두르다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뭐가 재밌니, 응?” 하고 덩달아 웃었다. 그는 어떤 것들은 예고될 수 없으며 호명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담대해졌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그는 촛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손뼉을 쳤다.

‘전조등‘ 중에서


...때로는 시시하고 때로는 끔찍했으며 결국에는 죄다 망해버린 연애들이 있었다. 초라하게 사라진 나라들조차 폐허 어딘가에는 영광을 남기는 것처럼 그 연애들에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은 있었다.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저렴한 각본으로 사랑하느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어차피 첫 단추부터 이상했으니까.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중에서



...있는 꿈도 없는 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 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곽은 경쟁은 여전히 경쟁이며 선택은 기만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보편교양‘ 중에서



..그 글자들이 반짝거렸던 시절이 있었다. 사마귀는 어떤 생각에서인지 도리질을 하고는 계속 말했다.
  “그때는 이게 우연 같지 않았지요. 잘될 것 같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초침처럼 한 칸 한 칸, 시계추처럼 침착하게 살 거라고요.”

‘태엽은 12와 1/2바퀴‘ 중에서



...쇳덩이를 쥐고 두 발로 바닥을 밀어내는 순간.
  눈 내리는 겨울 오후의 고요. 산등성이의 헐벗은 자리. 교정의 새파란 인조 잔디. 철교와 고가도로. 박물관 앞에 전시된 녹슨 탄차. 모텔과 마사지숍의 현란한 입간판. 주인 없는 자동차들. 모두가 공평하고도 아늑하게 하얀 눈에 덮여서, 미처 닿지 않는 그늘에서도 단정한 마음으로 목도리를 여밀 수 있었던 날. 왼발 오른발을 눈밭에 디디며 빙판과 진창의 시간을 예비하던 긴 겨울의 한가운데.
  그날이 송희가 정말로 역도를 그만둔 날이었다.

‘무겁고 높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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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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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꽤 똑똑해. 어쨌든 우리 둘의 친구인 저 녀석보다는 똑똑하니까. 하지만 자네에게는 오점이 있네. 오래된 약점. 자네는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여기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곧 알 수 있을 걸세. 자네 역시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졌다는 걸. 자네가 세상과 싸울 거라는 얘기가 아냐. 세상이 자네를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내도 자네는 아무것도 못할 걸세. 그냥 멍하니 누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겠지. 자네는 항상 세상에게서 실제로는 있지 않은 것, 세상이 원한 적 없는 것을 기대하니까.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옷을 입고 밭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해마다 일하던 곳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떠올리려고 했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아버지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마른 흙 한 덩이를 손으로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부스러뜨리며 달빛 속에서 어둡게 보이는 흙 알갱이들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바지에 손을 털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 하나밖에 없는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동이 틀 때까지. 땅 위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척박한 회색 땅이 그의 앞에 무한하게 펼쳐질 때까지.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의 의식 가장자리에 뭔가가 모이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자신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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