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학파와 간디도 어떤 면에선 일리가 있다. 그들 말대로 부정적인 감정을 쉽게 느낀다면 세상과 삶에 애착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걸 오웰과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에 완전히 얽매여 있고 그것에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 통제형 성인과 요새 유행하는 현대판 성인은 인간사의 혼란스러움에 휘말리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 혼란이 바로 당신의 삶이다. 그 혼란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은 인간성을 버리려고 힘쓰는 것이다....감정의 거친 모서리를 다듬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 또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항상 우리가 내린 선택이나 결정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정이 우리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감정이 틀리고 판단이 옳은 건 아니다. 감정은 나름의 지능이 있어 때로는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기도 한다. 그렇다면 감정이 우리말을 듣도록 훈련시키기보다는 우리가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도록 허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 놓지 못하는 까닭은 감정을 그대로 두면 그 감정이 영원히 지속될까 봐, 그 감정이 우리를 집어삼킬까 봐 또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의 일부는 감정이 우리 안에 있는 사악한 뭔가를 나타낸다는 믿음을 심어 놓은 성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은 사악한 게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그 애착의 일부일 뿐이다. 나쁜 감정은 당신을 잡아먹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나쁜 감정을 느낄 것이고 그건 결국 사라질 것이다. ...자아를 솔직하게 사랑한다는 건 자아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자아가 연약함을 느낄 때, 나쁜 감정이 찾아올 것이다. 나쁜 감정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건 우리가 나쁜 감정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며 그건 당연한 일이다. 나쁜 감정을 없애려 하거나 밀어내려 하는 건 실수다. 우리에겐 나쁜 감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삶이 의미 있는 건 삶 속에 나쁜 감정이 함께해서다. 삶에 대한 애착은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바로 흙이다. 흙이 충분히 기름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흙에는 지렁이가 가득하다....감정 성인이 약속하는 행복한 평화는 이런 인간적인 삶을 희생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삶을 잘 살려면 아니 그저 살아가려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인간 세상에 완전히 몰입해 비극적인 일과 기쁜 일, 이상한 일, 평범한 일과 같은 인간사의 모든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삶이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나쁜 감정도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야생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감정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우리가 그걸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분노는 당신이 무시당했거나 해를 입었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분노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급하게 분노에 대한 결론을 내리거나 분노를 다른 것으로 바꾸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