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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평점 :
...이 사고실험에는 괴이하고 거의 부적절하게 다가오는 대목이 있다. 단순히 ‘위대한 작품을 쓴 주체가 인간이 아니다’라는 점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위대한 작품이 24시간 동안 288편 나왔다’라는 상황이 문제다. 자동차나 휴대전화는 24시간 동안 288대가 생산되어도 괜찮지만, 위대한 작품은 그렇게 나오면 안 될 것 같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 대상을 분류해요. 그렇게 범주화하면서 약간 오류가 있어도 무시하고 데이터를 카테고리로 관리하죠. 그렇게 관리를 하니까 고정관념이 생겨요. 그런 고정관념들이 일을 빨리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어떤 요소들은 배제하게 돼요. 어쩔 수 없죠. 머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유한하니까. 그런데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죠. 모든 요소를 다 고려합니다. 인공지능이 그렇게 해서 둔 수를 보고 ‘진짜 좋은 수인데’ 하고 감탄하면서 분석해 보면 그게 가장 기본에 충실한 수인 거예요. 바둑뿐 아니라 우리가 쓰는 언어 자체가 그래요.”
...결국 바둑계에서 사용해 온 ‘기풍’이라는 단어는 현실 세계의 특정한 현상에 대한 모호한 비유였다. 따지고 보면 ‘성격’이나 ‘철학’이라는 단어 역시 그렇다. 인간은 그런 개념어와 비유에 기대어 세계를 파악한다. 언어는 도구다. 그 도구에 기대지 않는 인공지능이 언어라는 도구에 기대야만 하는 인간들보다 더 훌륭하게 과제들을 수행할 때, 언어에는 균열이 생긴다. 우리는 ‘그 말이 무슨 뜻이냐’를 비로소 제대로 묻게 된다.
...알파고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들이 가진 설명 도구라고는 인간의 언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창의적이라든가 수비적이라든가 배짱이 대단하다든가 뒷맛을 고려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알파고의 바둑을 평했다. 인격이 없는 대상에 인격을 부여하는, 전형적인 인간의 언어였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수많은 사물을 의인화하고, 상상의 감정이나 성격을 만들어 거기에 자신의 마음을 이입한다.
...만약 바둑이 예술이며 돌이 놓인 형태가 바로 예술작품이라면 바둑 AI 프로그램은 대단히 뛰어난 예술가라는 뜻이다. 범용 인공지능은 모든 인간 예술가를 압도하는 뛰어난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그때 인간 예술가는 인공지능에게 예술을 배워야 한다.
바둑이 예술이지만 돌이 놓인 형태 그 자체는 작품이 아니라면 바둑 AI 프로그램은 예술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술의 영토가 아직 기계에 침범당하지 않았다는 위안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무엇이 예술인가, 바둑의 어느 부분이 예술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거기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서 예술가가 되고자, 혹은 예술가로 남고자 하는 사람들이 중시하는 가치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일을 하면서도 적당한 급여를 받을 때, 그 일에 왜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새로운 가치의 원천을 찾아내지 못하면 인공지능에 기반한 사회는 거대한 ‘죽음의 집’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급여와는 상관없다.
...과학 연구와 기술 개발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 좋은 일이라는 주장 아래에는 공리주의가 깔려 있다. 공리주의는 매우 설득력 있는 논리이고 현대 경제학의 밑바닥에 깔린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다른 윤리 이론과는 잘 연결되지 않으며, 많은 경우 우리의 도덕적 직관과 충돌한다. 공리주의를 개인적 도덕 원칙으로 삼는 사람은 종종 소시오패스처럼 보인다. 공리주의자들도 어떤 고통은 삶에서 제거해야 하는 얼룩이 아니며, 그 고통은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