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의 제1국은 2016년 3월 9일 오후 1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 30분에 끝났다. 3.5시간이 걸렸다. 어림잡아 체스 마스터가 6시간 경기하는 에너지만큼 쓰였다고 생각한다면 이세돌은 대략 1,680킬로칼로리를 소모했다. 조코비치가 단식 경기를 3시간 치른 셈이다. 알파고는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했을까? 알파고는 1,202개의 중앙연산처리장치(CPU)와 176개의 영상처리장치(GPU)를 사용했다. 대략 5만 킬로와트시(kWh)를 사용했을 것이다....알파고는 이세돌보다 에너지를 5만 배나 더 사용한 셈이다. 인공 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물론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인공 지능 하나가 인간 5만 명만큼의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칼 세이건은 1996년 암병상에 누운 채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한 메시지를 온 인류에게 보냈다.“저것은 바로 여기입니다. 저것은 고향이며, 바로 우리입니다. 저기에는 당신이 이제껏 들어온 모든 사람, 살았던 모든 인간, 살아왔던 그들의 삶이 모두 있습니다. (…) 우리의 행성은 광활한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하나의 외로운 얼룩에 불과합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를 구해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크산토필과 카로틴 같은 색소는 가을에 화려한 단풍으로 만산홍엽의 계절을 연출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여 주말 고속도로를 꽉 막으려는 음모를 품고 그 무더운 여름을 버텼던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자연은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크산토필과 카로틴이 이파리에 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크산토필과 카로틴은 엽록소가 흡수하지 못하는 약한 빛을 흡수해 그 에너지를 엽록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알아주지 않을 뿐 그들은 꾸준히 일을 한다. 엽록소가 다 파괴된 단풍철에도 마찬가지다. 크산토필과 카로틴은 여전히 아주 적은 양의 광합성을 한다. 이들은 나무가 세포 속으로 들어가는 물이라도 아끼려는 심정으로 이파리를 떨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애쓰는 것이다. ...나무는 가장 풍요로운 계절에 이파리를 떨군다....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엄청난 양분을 열매에 저장해두었다. 열매는 나무가 겨울을 버티기 위해 양분을 저장해놓은 것이 아니다. 동물에게 주는 것이다. 열매를 먹고 먼 곳에 똥을 싸서 그곳에서 씨앗이 움트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나무는 다음 해에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여름부터 꽃눈과 잎눈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게 늦가을에야 완성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같은 클리셰를 쓸 수 있을까? 이제는 끝났다. 우리는 이 멋진 클리셰를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올해보다 훨씬 더 뜨거웠던 경험이 있어야 동감할 수 있는 문장인데 이젠 앞으로 영원히 그때의 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여름에 대한 기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새롭게 맞이하는 올해 여름이 가장 뜨거운 여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