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의 봄날도 나의 것이다 지옥에 봄이 오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기에 죽어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기에 지옥에 텃밭도 가꾸기로 했다 상추 고추 쑥갓 파 호박을 심어 호박잎에 저녁별을 쌈 싸 먹을 때마다 마음은 더욱 가난한 흙이 되기로 했다......흙탕물이 튀어서 내 마음이 더러워진 적은 없다 한때는 분노와 증오의 붉은 흙탕물이 되어 내가 썩어간다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흙탕물이 흙탕물 그대로 있는 게 아름답다 모내기를 끝낸 저 무논을 보라 물은 흙탕물이 될 때 비로소 흙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흙은 흙탕물이 될 때 비로소 물에서 모를 키운다....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사랑이 분노의 눈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더 견고한 분노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드디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엎드려 꽃을 맞이하지 못하고 사랑이 증오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오할 것이다 사랑이 상처가 아니라는 사실에 상처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인간은 사랑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랑이 인간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