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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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려면 빈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생태계는 꽉 차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가 생태계에 빈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멸종이다. 멸종이란 다음 세대의 생명체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는 항상 그래왔듯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남겨진 상처의 심각성에 상관없이 적응하고 진화할 것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가 등장할 것이며, 아마도 여러분이 한때 집이라고 불렀던 세상에 대한 기억이 그들의 DNA에 저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여러분이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아직 불확실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마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제 안위를 걱정하는 대신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얼굴에 남은 물리적 흔적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정신적 유산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 자초한 불길의 잿더미에서 떠오르는 불사조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경고의 메시지가 될 것인가. 저는 생명체의 역동적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에 불과하니 저에 대해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여러분 자신을 걱정하십시오. 생존과 멸종을 결정하는 시소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입니다.



....유년기가 짧다는 것은 우리 네안데르탈인에게 치명적이다. 유년기는 정말 중요한 시기다.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 안전하게 머물면서 복잡한 사회 규칙을 배우고 생존 전략을 깨닫고 놀면서 창의력을 키우는 시기다. 창의력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별난 아이디어가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이미 있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새롭게 조합해서 나오는 것이다. 창의력이 생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놀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유년기가 너무 짧다.



....지구에서 일어난 멸종 사건 가운데 세 번째 대멸종처럼 처참한 사건은 전무후무하다. 이때 생명의 95퍼센트가 멸종했다. 95퍼센트가 멸종했다는 뜻은 100마리 가운데 95마리가 사라졌다는 게 아니다. 100종의 생명이 살고 있었다면 이 가운데 95종은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조리 싹 다 죽어 사라졌으며, 나머지 5종만 살아남았는데 잘 살아남은 게 아니라 겨우 몇 개체씩만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세번째 페름기 대멸종의 목격자로서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남긴다.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한다. 또 최고 포식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생물량이 가장 많았던 생물은 반드시 멸종한다. 보통 두 가지를 겸하는 일은 없다. 먹이 피라미드의 가장 위를 담당하는 최고 포식자는 생물량이 적고,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물은 먹이 피라미드의 아래쪽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최고 포식자이면서 생물량도 가장 많은 별난 생명이 등장할지. 만약 그렇다면 그 생물 종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생명일 것이다. 가장 성공적이지만 대멸종의 시기에는 가장 파멸적인….

 


....우리 상어는 핵심종keystonespecies이기 때문이다. 핵심종이란 적은 개체가 존재하지만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물종을 말한다...바로 나, 백상아리는 현대의 상징적인 포식자 중 하나다. 하지만 해양 생태계에서 핵심종 역할을 할 뿐, 인간에게는 그다지 해가 되지 않는다. 〈죠스〉는 영화일 뿐이다. 우리가 네 차례의 대멸종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의 기회주의적인 속성 때문이기도 하고 생태계에 꼭 필요한 핵심종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우리에게 배우시라. 지구에서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 싶다면.



....자연선택이란 무엇인가? 유리한 형질이 있는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해져 후대에 자신의 형질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형질은 유전자 풀pool에서 제거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자연선택은 있을 수 없고, 진화도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내가 죽음을 발명한 순간은 생명 진화의 결정적 시점이었다.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발달, 유지, 적응을 촉진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세포의 자멸은 세포의 생명 주기를 조절하며, 보다 넒은 개념의 죽음은 유전자 변이와 자연 선택에 의한 생명의 영속과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생명의 능력은 지구 생명체의 복잡성과 회복력의 원천이다. 이게 다 누가 만든 능력일까? 바로 나 미토콘드리아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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