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놀라운 사건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이 작은 바늘 하나가 툭 떨어지듯 시작하여 꼬리를 물고 연쇄한다. 길 잃은 개 한 마리의 출현만큼이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저 세월 속에 묻혀 흘러가는 여느 일탈로 말이다. ...내 아버지의 담뱃갑과 내 어머니의 은가락지. 내 이름과 내 육신을 제외하면, 부모님이 내게 남겨주신 건 오직 이것들뿐이었다. 이 행운의 부적 덕분에 나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수년간 이 거친 삶에서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아무도 듣는 이 없이 자신의 말소리가 공허하게 흩어져 버리는 걸 느끼며 옥희는 어쩐지 버즘나무의 하얀 씨앗들을 떠올렸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오묘한 방식으로 비추어 내릴 때마다 마치 공중을 떠다니는 별처럼 반짝이던 그 솜털 같은 씨앗들. 바람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부는데도 그 씨앗들은 모두 단호하게 제각기 다른 길을 택해 사방으로 나부끼며 날아갔다. 언젠가 옥희는 그것들이 땅바닥까지 내려오는지 꽤 오랫동안 집중해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개도 온전히 떨어지지 않은 채, 그 모든 씨앗은 하늘과 땅 사이의 하염없는 공간을 계속 둥실둥실 떠다닐 뿐이었다. 자신의 말이 바로 그 흰 씨앗들처럼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고 방 안의 허공을 맴돌기만 한다는 걸 느꼈을 때, 옥희는 이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