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운동의 치유력에서 무기력을 무너뜨릴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운동은 내 속에 있는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해준다. 물론 운동이 누군가 당신에게 가하는 폭력을 사라지게 해주지는 않는다. 당신을 가로막는 사회적 장벽을 무너뜨려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운동은 적어도 무기력한 사고방식에서 빠져나오는 데 필요한 추진력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능성이 보일 때는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노출된 동물은 무기력을 학습하지만, 최소한 달리기를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동물(예컨대 쳇바퀴에 접근할 수 있는 동물)은 경직될 가능성이 낮은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노화에 대해 이중 기준을 지니고 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노인은 공경하고 높이 평가하지만 낯선 노인에게는 차별적이고 가혹한 고정관념을 적용한다. 이는 같은 노인을 두 어린이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 아이는 ‘사람’을 보고 다른 아이는 ‘고정관념’을 보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처음에 아이가 노인을 보는 방식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나중에는 노인을 대하는 방식까지 지배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뜻밖의 결말도 등장한다. 그 어린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노화에 대한 가혹한 관점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인 셈이다. 나이 든 자신을 우울하고, 외롭고, 병들고, 구시대적인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나이 먹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이유다. ...르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때문에 현재 우리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는 명백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몸에서 빼앗아 정신에게 주었는지 돌이켜보라. 생산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합리화하지만 실은 시간을 머리에만 할애할수록 생산성은 오히려 형편없어진다. 데카르트는 틀렸다! 정신과 육체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둘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생각을 잘하고 싶다면 움직여야 한다....운동과 그릿 사이에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운동은 실행기능을 강화하고 실행기능은 그릿을 만들어 우리를 다시 체육관으로 데려간다. 여기서 가장 활약하는 실행기능은 억제 조절력이다. 억제 조절력은 자기통제력을 높여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을 때 처음 몇 개월을 버티게 도와준다. ...목표 중심의 사고방식이 이 정도로 악영향을 미치리라고는 나도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운동은 대개 우리가 휴가 모드일 때 이루어지고 내재적인 만족감을 제공하는 반면, 목표는 작업 모드의 지배를 받으며 외재적인 만족감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목표에 지나치게 치중하며 운동하면 작업 모드와 휴가 모드 간에 긴장이 발생해 정신이 피로해진다...외재적 동기인 목표가 아니라 내재적 동기인 경험에 집중했다면, 운동이 힘들지 않고 즐거웠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운동의 경험에 오롯이 집중하면 끝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몰입에 이르게 된다. “성공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걸어온 여정 그 자체다. 결과보다 경험이 더 중요하다”라는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아서 애시의 명언은 내재적 동기의 중요성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