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마티아스 뇔케 지음, 이미옥 옮김 / 퍼스트펭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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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사람은 안다’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즉,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 표현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를 ‘낮춰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철학자 켄달 월튼은 “겸손은 우리를 착각으로 몰고 가려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서 표현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겸손한 태도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과 그의 태도에서 겸손함을 읽는 사람을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남이 정한 경계는 나를 가두지만, 내가 정한 경계는 나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끝이나 한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정체성을 세우는 표시다. 내 경계 너머에 있는 것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경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을 쓴다. 즉,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경계 너머를 위해 나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다. 경계 너머를 바라보며 그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경계를 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을 줄이고 제한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힘에 집중할 수 있다.



...절제는 ‘전략적 비관주의’라고 부르는 태도와 매우 가깝다. 전략적 비관주의자들은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노력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들은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면서 더 차분하고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임한다....“이런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실패의 두려움을 장악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미국의 추리소설 작가 렉스 스타우트가 창조한 형사 캐릭터 네로 울프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전략적 비관주의자들은 오로지 긍정적인 놀라움만 체험한다.”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의 책 『욜레슈 아주머니 혹은 일화로 보는 서양의 몰락』을 보면 여주인공이 매우 똑똑한 말을 뱉는 대목이 나오는데, 겸손을 떠벌리는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리고 이 장을 끝맺기에도 참 적합해 보인다. “그렇게 겸손하게 굴지 마. 당신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거든.”
 

“스스로 높이 올라간 사람은 누구든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낮추는 사람은 높이 올라가게 되느니.”
_ 누가복음 18장 14절
 
“누가복음 18장 14절을 조금 더 수정하면 이러하다.
스스로 낮추는 사람은 높아지고자 한다.”
_ 프리트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그룹 브레그먼파트너스의 대표 컨설턴이자 CEO인 피터 브레그먼은 이렇게 말했다.
“뭔가에 대해서 모른다는 게 들통나면 상처받고 나약해질 거라고 보통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비밀을 살짝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실 뭔가를 몰라도 되려면 어마어마한 자신감, 자기 자신을 존경하는 마음과 힘이 필요합니다. 리더가 지녀야 할 자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모를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른다는 것은, 진실과 삶의 현실 앞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뭔가를 알기 때문이 아닙니다. 몰라서 시도하는 것이지요.”





일본의 미학에는 ‘와비사비(わびさび)’라는 개념이 있다. 미완성, 단순함을 뜻하는 ‘와비’와 오래됨, 낡은 것을 뜻하는 ‘사비’가 합쳐진 용어로, ‘완벽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의미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찻주전자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녹슨 자국, 똑바로 뻗지 못한 마디가 있는 소나무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어떤 사물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들, 변색되거나 뒤틀린 오브제들은 결코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물건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표식이다. 즉, 그 안에 강인하고 진실한 삶이 숨어 있는 것이다.

...와비사비는 우리 자신의 삶에도 해당된다. 삶에 대한 우리의 입장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특별함을 보다 자세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삶으로부터 얻은 긁힌 자국들은 결코 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무결점의 이상형에 상응하는 삶을 살거나 기존에 통용되는 목표나 기준들을 이어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삶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게 아니라 제한하며,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방해가 된다. 성과를 내려고 스스로의 힘을 소진할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유일무이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삶은 비로소 행복하고 충만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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