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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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전쟁에 의한 ‘특수’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이와 같은 ‘특수’가, 무기의 주요 생산자인 강국의 자본가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불경기의 시기인 것이지요. 2023년 11월에는 미국 뉴욕 월가에서 ‘하마스 특수’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미국의 군수업체나 그 업체에 투자하는 금융업계에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미 2022년 봄부터 미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인해 군수 복합체 주요 업체들의 주가가 계속 오름세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엄청난 규모의 ‘특수’를 창출해낸 러시아는 2023년 3.5퍼센트 정도의 경제성장률이 예상된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남성들이 군대로 동원되는 ‘전쟁 특수’로 인해 러시아에서 완전 고용 상황까지 이루어져 임금 인상 효과까지 나타났습니다. ‘전쟁 특수’가 많은 민초들의 주머니 사정에까지 영향을 미쳐 푸틴에 대한 80~82퍼센트의 지지율로 이어진 것이지요.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좌파적 불만의 에너지가 국가와의 “공생”을 선택한 연방 공산당으로 흡입되는 만큼 좌파의 대부분은 국가에 위협되지 않는, 상당히 국가주의적 스탈린주의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좌파가 형성되려면 아마도 10~20년 정도는 소요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 국가의 통치술이 더 고도화될 가능성이 크고요. 다시 말해 소련의 망국이 궁극적으로 새로운 계급투쟁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장기적으로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적 프레임이 대단히 길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선은 군사력을 이용해 완결된 영토적 제국을 건설한 뒤에 서방과의 경쟁으로부터 차단된, 즉 보호받는 경제 영토 안에서 은행 자본과 IT 자본 등을 키우려는 것이 러시아의 장기적인 계획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블록 경제” 건설 계획은 “완전한 국유”가 아닌 “국가 주도의 시장 경제”이기는 하지만,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서유럽 혁명 운동의 지원 없이 소련만으로도 혁명 정권을 유지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주장)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총동원 전쟁 시절의 일본이 그랬고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도 그랬지만, 이러한 지급자족형 블록 경제 건설은 대체로 엄청난 대민 탄압과 국가적 폭압을 수반했습니다. 푸틴의 새로운 “완결된 제국” 안에서 힘없는 피착취 대중과 재야 인사, 정권의 반대자, 비판적 지식인들이 맞이할 운명이 어떨지 쉽게 예상됩니다.




...러시아가 역사상 최고 수위의 서방 제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대서방 대결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이나 인도 내지 튀르키예나 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 남미 등을 통해서 제재를 ‘우회’할 수 있을 것으로 여전히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스라엘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마저도 대러시아 제재에 불참했다는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군사적으로는 밀리지만, 다극화돼가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미국의 경쟁국들이 상당히 높은 수위의 대미 도전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전쟁에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들에게 세계적인 위기 국면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수복”(재점령)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인식됐습니다. 한데 러시아가 경제적 약자인 만큼, 세계 재분할 전쟁 과정에서 경쟁 열강으로부터의 공격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 낫다는 판단도 아울러 있었던 듯합니다. 즉, 선수를 침으로써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경제와 전 사회를 먼저 군사주의적 동원 모델로 재편하면 어차피 벌어지게 돼 있는 세계적 “사투” 국면에서 비교적 유리한 위치가 될 수 있다고 인식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자랑스러운 면들이 러시아 고전문학에 존재하지만, 아쉽게도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은 “예외”에 가까웠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푸시킨이나 도스토옙스키부터 노벨상 수상자인 요시프 브로드스키나 러시아 원로 시인인 알렉산드르 고로드니츠키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문학의 “당연한 배경”은 바로 ‘제국’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문학가들은 ‘제국’을 ‘문명화’를 추진하는 긍정적 행위자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간주하고, ‘현지인’이나 ‘적국’의 저항에 부딪치는 경우 ‘제국’의 군사력을 옹호하곤 했습니다.




...일부 좌파 논객들은 나토의 확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도발”했다고 보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침공이 궁극적으로 푸틴 주위 집단이 추진하는 일종의 “국가 주도 개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전쟁 개입과 1970년대 한국에서 추진된 병영국가화 및 방위산업 발전에의 중점 등과 견주고 싶습니다. 문제는 전쟁이 국가 개발 전략의 일환이라면, 이 전쟁이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는 점입니다. 서방이 평화 협상에 나선다고 해도 6·25 전쟁의 종전을 원치 않았던 스탈린처럼 푸틴도 협상을 질질 끌면서 그에게 득이 되는 전쟁 행위를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입니다.




...저는 평양 교과서들에 실린 북한 정권의 공식 신화들이나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서 발견되는 대한민국 중심의 역사 내러티브 등을 두루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만, 그것들을 분석의 재료로 사용할 뿐입니다. 제가 원하는 세상은 다양한 정체성들이 공평하고 동등하게 존중받는 평등한 세상입니다. 강국이 헤게모니적 민족주의로 비교적 취약한 집단들을 억누르는, 그런 세상이 아니고요.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대한민국이 이미 타자들에게 헤게모니적 민족주의를 강요할 수 있는 “미니 강국”으로 성장했으며, 이미 이들에게—특히 연변 재중국 동포 등 비한국적 조선인 디아스포라 집단에 대해—인식론적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프랑스 등)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물론 당연히 필요합니다. 한데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러시아 등과 같은 그 경쟁 세력에 대한 무비판적인 추종으로 대체하면 결국 그 환상들이 언젠가 다수에 의해 깨져 환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환상과 환멸의 주기는 궁극적으로 보수적인 기득권자들에게만 득이 됩니다. 그 “환상과 환멸”의 악순환을 멈추게 하자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모든 제국주의 세력들에 대한 실사구시이며 비판적인 태도입니다. 미국이든 러시아든 그 어떤 열강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떠한 환상도 가지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푸틴의 서사에서 ‘중앙집권적 권력’이 차지하는 위치를, 한국 극우 담론에서는 ‘시장’과 ‘능력’이 점하고 있고요. 결국 가난한 러시아 젊은이들 다수가 복지비용이 아닌 군비 증액과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듯, 많은 가난한 한국 청년들도 사실상 대물림되는 집안 자원에 좌우되는 ‘능력’에 따른 격차를 긍정합니다. 러시아인 못지않게 많은 한국인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정반대되는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위기 시대의 디스토피아인 신권위주의의 위험으로부터 한국 또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현재로서 개연성이 가장 높은 결말은 적어도 러시아가 그동안 강탈한 영토의 일부를 자국 국토에 편입시켜 “국토 확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우크라이나와 같은 수많은 “중간 지대” 주변부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보호가 가치 절하돼 미국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겠지요. 더불어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 경쟁 열강들의 지속적인 대미 공세에도 탄력이 붙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재분할을 의미하는 이 새로운 공세들은 또다시 새로운 전쟁과 엄청난 희생 등을 낳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본격적인 “전쟁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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