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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오디세이 - 한 권으로 끝내는 반도체의 역사와 세계 반도체 전쟁의 모든 것
이승우 지음 / 위너스북 / 2023년 11월
평점 :
...반도체 공정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먼저 포토마스크에 새겨진 패턴을 웨이퍼 위에 잘 전사하는 단계이다. 이어서 식각과 증착 작업을 반복하며 웨이퍼의 아래쪽부터 시작하여 한 층 한 층 회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에 더하여 전기적 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이온 주입과 소자 간 연결을 위한 배선 작업, 그리고 중간중간의 세정 단계도 진행된다. 이러한 단계의 반복을 통해 반도체 내부의 구조가 형성된다. 이 과정은 한 번 또는 두 번의 단순한 과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첨단 반도체 회로의 경우 수십 장의 포토마스크가 사용되며, 평균적으로 3개월 이상의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애플의 반도체 독립 전략에서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프로세서 공급 업체였던 삼성을 버리기로 했던 결정이다. 삼성은 애플의 가장 중요한 반도체 협력 업체였지만, 동시에 아이폰의 최대 경쟁자이기도 했다. 결국 애플은 삼성과의 오랜 관계를 버리고 2014년 새로운 파트너로 TSMC를 낙점한 것이다. 애플이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갖추게 된 이상 파운드리 생산을 최대 경쟁사이기도 한 삼성전자에 맡길 이유도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TSMC는 자체 브랜드의 제품은 전혀 만들지 않는다. TSMC는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등의 제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제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이기 때문이다. 대만은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대신 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공생하는 것이 대만이 추구해야 할 방향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TSMC는 칩을 대신 만들어주고, ASE는 이를 대신 패키징해주며, 폭스콘은 아이폰을 대신 제조한다. 이러한 공생 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특히 팬데믹 이후로는 상당히 성공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TSMC는 최종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반도체 최종 제품 매출 집계에서는 제외된다. 하지만 2022년 TSMC의 실적은 매출 759억 달러, 영업이익 376억 달러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와 인텔을 넘어섰다. 따라서 실질적인 의미에서 TSMC는 세계최대의 반도체 기업으로 인정된다. 그리고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2025년 즈음이면 2000년 이후 총 누적 영업이익에서도 TSMC가 삼성전자와 인텔을 제치고 1위에 등극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설립 30주년인 2023년 상반기 엔비디아는 반도체 업체로는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엔비디아를 ‘GPU의 최강자’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오산이다. 엔비디아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엔비디아가 AI 컴퓨팅을 위한 칩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네트워크 등 풀스택 경쟁력을 갖춘 업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풀스택이란 CPU, GPU,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 컴퓨팅 기술의 전 영역을 모두 갖춘 것을 의미한다. 엔비디아의 CUDA(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를 일종의 프로그래밍 랭귀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좀 더 큰 일종의 프레임워크 개념으로 보는 것이 좋다...CUDA로 프로그래밍을 할 경우에는 엔비디아 GPU에 직접 엑세스해 세부 기능을 하나하나 컨트롤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우수한 성능을 낼 수 있다. 결국, GPU 생태계를 선점했다는 점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통합이 가능하다는 점이 엔비디아-CUDA 중심의 AI 생태계를 강화시킨 핵심 요인이라 볼 수 있다.
...과거 다운턴은 삼성 입장에서는 오히려 경쟁 업체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번 다운턴에서는 그와 같은 공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쟁사를 압도했던 기술력도,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도 과거 우리가 알고 있던 삼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부활 프로젝트, 인텔의 파운드리 진출 선언, DDR5와 HBM3에서의 초기 주도권 상실 등 삼성전자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절대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과연 지금의 위기를 돌파해 반전의 계기를 만들고 더욱 발전된 초신성으로 진화할 것인지, 아니면 결국 임계점을 넘지 못하고 활력을 잃어가는 백색왜성에 만족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반도체 전체 매출에서 팹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약 8% 수준이었으나, 2022년에는 32% 수준까지 높아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팹리스 역할을 하는 기업들의 범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파운드리의 절대 지존인 TSMC의 최대 고객이라 한다면 그 업체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팹리스 업체일 것이다. 그런데 TSMC의 넘버원 고객은 다름 아닌 애플이다. 전통적 팹리스 기업으로는 퀄컴이나 브로드컴, 엔비디아, AMD, 마벨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본업이 반도체가 아닌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테슬라 등이 파운드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업체들이 파운드리에 주문해서 만든 반도체는 외부 판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WSTS(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 등의 통상적인 반도체 매출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반도체 통계 자료를 볼 때 이 같은 점들을 고려한 보다 섬세한 해석이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스크류의 공기방울에서 시작된 도시바-콩스베르그 스캔들과 플라자 합의, 그리고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결국 일본의 전자제품과 반도체의 몰락, 그리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헬게이트가 열린 셈이다.
...2022년 3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대만·일본 등에 ‘칩4 동맹’을 요청했다. 반도체 빅 플레이어와 핵심 기술을 보유한 국가들끼리의 동맹을 맺어 중국의 반도체 굴기 야심을 완전히 꺾어 놓겠다는 목적이 다분하다. ... 미국은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카드를 꺼냈다. 반도체 제조의 주도권을 아예 본토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자국내 반도체 생산 라인을 지으면 25%의 세액을 감면해 주는 칩스법을 통과시켰다... 유럽 주요국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독자 생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결국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세계 경제와 기술 시스템을 유지해왔던 글로벌밸류체인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세계 자유무역 시스템의 최대 수혜를 본 국가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제 분업화의 핵심인 GVC(글로벌밸류체인)가 더 이상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을 경우 한국 경제는 상당한 리스크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도체 패권전쟁은 세계화의 균열과 맞물려 더 치열해지고 있다. 또 다른 50년 전쟁이 시작됐다.
....힌튼은 ... 인공지능의 위험으로 ‘퓨 샷 러닝(Few-shot learning)*’, ‘작화증(confabulations)**, ‘하위목표(subgoal) 설정***’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 학습된 대형 언어 모델은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새로운 것을 굉장히 빨리 배울 수 있고, 학습한 것들을 조합해 전혀 배운 적 없는 주장을 내세우게 된다는 개념.
** 공상을 실제 일처럼 말하면서 자신은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 인간에게 작화증은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 AI가 이미 인간처럼 사고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가능하다.
*** 여러 발생 상황이나 변수를 고려해 AI가 하위 목표를 자체적으로 설정하는 행위. 이게 가능해지면 SF물에서 봤던 것과 같이 AI가 인간의 통제 영역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