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비범한 철학 에세이
김필영 지음 / 스마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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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단 한 번이지만, 이 삶은 박제되어 영원한 운명이 됩니다....“아모르파티”, 이것은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라 “운명을 사랑스럽게 만들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사랑스럽게 만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운명은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반복될 운명을 체념하고 내버려둘 수는 없죠.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삶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화법을 보면, 그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반대일 수 있지 않을까요? 무의미한 삶 속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도는 결국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면, 기다림 자체를 의미로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기다림 자체가 의미라면, 무의미한 것을 기다리는 것이 반드시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이미 진 경기더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떤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합니다. 심심한 이유는 자신이 심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괴로운 이유는 자신이 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다람쥐는 심심하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아요. 다람쥐가 심심하거나 괴롭다고 느낄 만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심심하거나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다람쥐에게는 ‘나’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개념을 상정할 수 있어야 자신이 심심하고 괴롭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깨닫는다’는 것은 나를 잊고 다람쥐처럼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히만은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 없음(Thoughtlessness)’, 그것이 바로 그가 유죄인 이유입니다....아이히만이 한나 아렌트를 속인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짜로 속은 사람은 한나 아렌트가 아니라 아이히만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신념을 자신의 신념이라고 스스로를 속인 것입니다. 히틀러에 의해서 주입된 가짜 신념을 자신의 진짜 신념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일까요? 아이히만이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성찰 없이 히틀러의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나 아렌트의 결론은 옳습니다. 아이히만이 유죄인 이유는 ‘생각 없음’, 즉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뮬라크르는 원본을 복사한 이미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미지가 원본보다 더 진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시뮬라크르는 한마디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라는 말입니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가 시뮬라크르의 세계라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상품이 아닌 상품의 이미지, 상품의 기호를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예로 든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동굴 속 그림자의 세계가 동굴 밖의 밝은 세계보다 더 진짜 같은 세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미국 거리 사진의 거장 게리 위노그랜드는 “나는 가끔 세상이, 거리가 내가 티켓을 사서 들어온 곳 같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 세상은 내게 큰 공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얼마나 럭셔리한 휴양지에 왔는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지, 내 차가 얼마나 비싼지 보여주려고 하죠. 이때 사람들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내가 보는 장면을 찍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볼 장면을 찍기 때문입니다. 마치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소년 네로가 신의 시선, 타자의 시선을 의식한 것처럼,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비비안 마이어는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우주는 0.00000…1%의 확률을 뚫고 존재하게 되었고, 우주에 생명체는 0.00000…1%의 확률을 뚫고 존재하게 되었으며, 우리 모두는 또 0.00000…1%의 확률을 뚫고 존재하게 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엄청 평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엄청 비범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평범하게 비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하기에 타자와 차별 없이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동시에 우리는 모두 비범하기에 타자와 차이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하게 비범한 존재이므로, 이처럼 타자와 동일성과 차이성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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