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편지
구본형.홍승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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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정해진 목적이 없습니다. 삶의 유일한 목적이 있다면 삶 자체입니다. 여행의 목적이 목적지에 닿는 게 아니라 여행 자체인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화려한 결과만을 위해 산다면 그것은 감나무를 키운 이의 마음이지 감나무의 마음은 아닙니다. 좋은 삶 그 자체가 훌륭한 결실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 다시 귓전에 들립니다.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 철학적 문법으로 쓰인 이 도도해 보이는 말의 본질은 바로 사랑이네요. “울고 있어.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 이 말은 러셀의 말을 문인의 문법으로 전환해 놓은 표현입니다. 나라면 신영복 선생의 ‘함께 맞는 비’라는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 비를 맞고 있고 나에게 우산이 있더라도 덥석 우산부터 씌워 주지 말자. 먼저 함께 비를 맞자.” 더 간단히 말해 볼까요? “곁에 있을게. 실컷 울어도 돼.”




....무언가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건 그것에 공감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리하여 공감의 넓이가 한 사람의 깊이를 말해 줍니다. 한 사람이 보유한 일체의 인식력과 감수성은 그이가 지닌 공감의 진폭이 얼마나 큰가에 의해 가름됩니다.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지.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그러나 그 실만은 변치 않아.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하지.너는 그 실에 대해 설명해야 해.그렇지만 그 실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그 실을 꼭 잡고 있는 한, 너는 절대 길을 잃지 않아.살다 보면 슬픈 일도 일어나고,사람들은 상처를 입거나 죽기도 하지.너도 고통받고 늙어갈 테지.네가 무얼 해도 시간이 하는 일을막을 수는 없어.그래도 그 실을 꼭 잡고 놓으면 안 돼.— 윌리엄 스태포드, 「삶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그때 갑자기 ‘삶이란 머리를 쓰는 게 아니구나.’라는 앎이 찾아왔습니다. ‘삶이란 온몸으로 사는 것이구나. 좋은 작가란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쓰는 글이 진실이구나. 그러므로 진실에 진실한 글은 심장을 뜨겁게 하고 손발을 진동하게 하고 낯을 붉히게 하고 누었던 몸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구나. 그리하여 다시 살게 하는구나.’
많은 이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즐겨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푸른 하늘에 흰 구름으로 글을 쓰는 작가였으면 좋겠습니다. 달빛 사이 섬돌 위 댓잎을 흔들고 지나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달의 문법을 가진 작가이고 싶습니다. 때론 내 속이 어떤 영감으로 흠뻑 채워져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순식간에 글을 써 내는 장면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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