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2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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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유대인으로 만든 특별한 조항은 바로 ‘토지 소유 금지’였다. 이것이 유대인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사람을 그 땅에 묶어놓는 유일하고 견고한 끈은 토지 재산이다. 이 끈을 끊어보라. 그는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게 된다. 그는 자신과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시민사회에 내동댕이쳐진 이방인으로 살아간다...토지를 소유할 수 없으니 농사도 지을 수 없었던 유대인은 중세시대부터 도시로 몰려들었고, 상인, 수공업, 고리대금, 무역을 장악했다.



...자칭 문명 세계에서 온 사람들은 혁명과 전쟁,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시대를 거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폭력과 무리수를 질리도록 경험했다. 어떤 이들은 폭력을 증오했고, 어떤 이들은 폭력의 논리에 익숙해졌다. 세계대전 직후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태초부터 이중적이고 이기적이었다. 그러나 전쟁 중 독일과 러시아에서 벌어진 대량학살과 증오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더 빠르게 폭력에 물들었고, 더 유연하게 상황 논리에 굴복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이스라엘의 3대 수상 골다 메이어는 이스라엘군이 휩쓸고 떠난 팔레스타인 마을의 참상을 목격한 순간, 부모님에게 들은 러시아에서의 유대인 학살 장면을 떠올렸다. 기분 나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아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겠지만, 결국 그는 침묵한 채 그 자리를 떠났다. -




...팔레스타인 학살은 무슬림의 분노를 극도로 증폭시켜 정치인들이 조절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버렸다. 모든 종교 지도자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이슬람의 숭고한 종교적 의무라고 정의했다. 어이없게도 팔레스타인 학살은 아랍 국가들이 욕망과 정치, 전쟁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는 행운을, 아랍 국가에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준비 안 된 전쟁에 민중의 감정과 정치가 개입했고, 전쟁 후에는 각국의 정치 지형을 파괴하고 흔들었다.



...라빈에겐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바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명령이다. 지금까지 유대인은 피해자였지만, 이제부터는 가해자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치가들은 군인들에게 악마가 되라고 강요할 것이다. 사실 1947년부터 그랬다....라빈은 금발을 휘날리며 이미 전장을 달리고 있었다.5월 14일은 이스라엘에서는 건국 기념일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금도 이날을 ‘나트바’라고 부른다. ‘나트바’는 재앙이라는 뜻이다



...제1차 중동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이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은 이때 생겨난 것으로 무려 65만여 명이었다.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도, 전쟁을 원한 것도, 전쟁을 주도한 것도 아닌데 아랍의 공격으로 인해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이스라엘도, 주변 아랍국들도 모두 적이었다.




...이스라엘의 예비군 제도는 예상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데는 유대인의 오랜 박해, 2,000년 만에 남의 땅이 된 나라로 귀향한 점, 사방이 적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작용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의 특수함은 특별한 정신력이 아니라 특별한 사회구조와 군 조직을 낳았고, 그것이 이스라엘군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직은 한 세대 이상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아랍과 이스라엘이 공존의 방식을 찾고 분노의 파도가 진정된다면 우리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예비군의 비중이 높다고 해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전쟁을 치르는 나라는 이스라엘 말고는 없다. 이는 군이 철저히 인맥으로 움직이며, 그 인맥이 전역 후의 정치, 경제, 사회까지로 뻗어 있다는 의미다. 전쟁을 포함하여 가장 훌륭한 인사는 형식적 절차와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적재적소에 가장 적절한 인물을 투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과 같은 방법을 쓰진 않는다. 정실 인사, 인맥 인사는 후유증이 장점을 덮고도 남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시스템을 부러워하면서도 모든 나라가 쉽게 도입하기 꺼리는 이유다. 6일전쟁 이후로 이스라엘 총리와 정계에서 군 출신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언젠가는 그 후유증을 겪을지도 모른다. 벌써 그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개혁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쉬워 보이는 개혁은 너무 늦게 시작한 개혁뿐이다. 인간은 변하지만 그 속도는 느리며, 모두 똑같이 변하지도 않는다. 아들의 시신을 붙잡고 우는 사람이 모두 반전주의자가 되지는 않는다. 선각자란 조금 빨리 변한 사람들이지만, 자신이 바뀌었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까지 갖춰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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