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우리를 구원한다면 - 우리 시대의 구루, 마틴 리스의 과학 에세이
마틴 리스 지음, 김아림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프리카 국가들이 북반구 선진국들과의 경제 격차를 좁힐 수 있을까? 아니, 빈곤의 덫에서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바로 지정학적인 긴장을 일으키는 국가 간 또는 한 국가 안에서의 불평등이다. 이전 세대가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 것과 달리, 이제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화장실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덕에, 자신들의 부당한 운명을 드러내는 세계에 대한 창을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민과 이주도 더 쉬워졌다.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 불만과 불안정이 생겨날 징조다. 



...그래도 우리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한 번쯤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따라오는 윤리적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볼 만하다. 오늘날의 위험 요소 명부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인류가 야기한 위협이 닥칠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인류 문명, 나아가 인류 자체가 미래 기술이 일으킬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단언할 근거가 전혀 없다. 여러 세대에 걸쳐 연쇄적으로 발생할 이런 ‘실존적’ 위협은, 기후 정책을 시행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위협의 초대형 버전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가 앞으로 100년 뒤에 살아갈 후손을 얼마나 신경 써야 하는지가 논란이 된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의 우리 세대보다 더 길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강경하게 덤벼드는 비평가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아이디어의 오류를 발견할 동기를 가진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기여한 사람들, 특히 기존의 합의를 뒤집을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존경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후 변화나 전염병 통제 같은 문제뿐만 아니라 (예전의 몇 가지 사례를 끌어들여) 흡연과 폐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에이즈(AIDS)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초기의 잠정적인 아이디어들이 좀 더 확고하게 굳어진다. 동시에 이것은 매력적으로 보였던 이론이 ‘사실’들의 가혹한 공격으로 파괴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과학은 ‘체계적인 회의론’이다.



...그럼에도 대중이 참여하는 공개 토론이 단순히 구호를 외치는 수준을 넘어서려면, 모든 사람이 과대 선전이나 잘못된 통계에 휩쓸리지 않도록 과학에 대한 ‘감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방향을 잘못 잡은 기술의 압박이 더욱 다양해지고 위협적으로 바뀌면서, 적절한 토론의 필요성은 앞으로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 같은 부류가 지배하는 시대에 닥칠 가장 무서운 결과 중 하나는 ‘팩트’ 즉 사실의 죽음이다. 오늘날 ‘탈진실 시대’에 접어들어 신뢰할 만한 출처에 대한 합의가 거의 없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갈릴레이로부터 영감을 얻어야 할지도 모른다. 갈릴레이는 지구가 태양의 궤도를 돈다는 것을 부인하도록 강요받은 뒤에도 나중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출처가 다소 불분명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것은 여러분이 무엇을 믿든 간에 ‘사실’은 항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슬로건과도 같다.
  이렇게 경고하는 사람은 이전에도 있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미래를 예언하듯 이렇게 썼다.
  “전체주의 통치의 이상적인 대상은 자신의 믿음을 확신하는 나치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실과 허구의 구별(경험한 현실)이나 진실과 거짓의 구별(사고의 기준)이 더 이상 머릿속에 없는 사람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