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감각하는 모든 정보를 신체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마음은 그것을 고통이라 정의했다. 그러므로 기쁨도, 환희도, 초월도, 아마 구원조차도, 인간이 이해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모두 고통이었다. “형제애와 희생을 주장해서 유명해진 작가가 있었어. 그 작가는 모든 고통은 도덕률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생각해서 도덕과 윤리를 지키고 신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에 따른 최고로 고귀하고 도덕적인 행위라고 설파했어. 그래서 철학자가 그 작가한테 물었어. 네가 형제를 위해 희생해서 고귀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면 너의 희생을 받아들인 그 형제는 대체 뭐가 되냐고. 애초에 아무도 희생할 필요가 없는 게 제일 좋지 않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