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의 참맛
박민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처럼 좋든 나쁘든 습관이 그 사람을 규정한다. 난 누군가의 하루를 보면 그의 삶 전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프랙탈처럼 하루가 모여 인생 전반을 형성한다고 믿고 산다. 내겐 습관이 아버지고, 신이고, 하나님이다. 내가 기필코 매일 운동하러 가는 이유다. 오늘 하체 운동을 빼먹으면 내일 등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진도가 밀리면 초조해지고, 그렇다고 무리하면 다치기 쉽다. 이렇다 보니 리추얼이 깨지면 하루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말도 있지 않나. “하루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인생 전체를 대하는 태도와 같다.”



...살다 보면 모든 게 지긋지긋할 때가 온다. 다 때려치우고 싶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꾸준히 쌓아온 것이 아깝고, 인내심을 제 미덕으로 받아들일 때 삶은 다시 정 궤도를 찾아간다.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런 꾸준함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루틴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했다. 지금도 무수한 사람들이 하루키 라이프를 실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루키는 그 흔한 SNS도 하지 않고 대외활동도 뜸하다. 그는 오직 글쓰기로 자신을 반영한다. 하루키는 어쩌면 작가로서 궤도를 이탈하는 모든 행위를 경멸하는지 모른다.



...그때 삶이라는 건 날 당기는 중력에 저항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난 가벼워지고 싶었다. 나를 얽어매는 모든 걸 끊어내고 싶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책을 펴기만 해도 메슥거리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난 우주를 떠올렸다. 아무것도 없는 고요의 세계에서 유유자적 살고 싶었다. 60여 년 전,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에 다다랐다. 사람이 더는 중력에 휘둘리지 않는 무중력의 세계가 펼쳐지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가가린은 지구를 벗어나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더 인류와의 교신이 필요했고, 인류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문명의 한계를 절감했다. 고요한 무위의 세계를 상상했던 가가린은 그간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주의 수많은 변수에 흔들렸다. 중력으로부터 놓여났지만, 간절히 다시 지구의 끌어당김을 그리워했다.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나눌 수 있다면 무엇이 더 ‘나’에 가까울까? 난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신이라고 믿으며 살았다. 유물론자보다는 관념론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은 실생활에서 영 쓸모가 없었다. 예를 들면, 치통 앞에서 인간은 정신머리를 논할 수 없다. 어금니가 욱신거리면 세상이 온통 고통으로 보인다. 이성이고 뭐고 오직 육체의 통증이 날 지배한다. 내 거죽이 내 신원을 증명하고, 카프카의 소설처럼 내 몸이 벌레로 변하면 우리 엄마는 나를 두루마리 휴지로 으깨서 변기통에 버릴 것이다. 그래서 난 헬스장에 갈 때마다 육체가 내 존재에 더 가깝다는 확신을 얻고 온다. 정신은 그저 뇌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니체는 말했다. “어떤 심오한 철학보다 더 큰 지혜가 육체에 담겨 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신하는 일은 몸을 움직이는 일뿐이다. 글쓰기는 단 한 번도 시원하게 내게 뭔가를 보여준 적이 없지만, 몸은 항상 정직하고 소탈하게 그 속을 내보여 줬다. 헬스장 바닥에 주저앉아 물 한 잔 마시고,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를 바라보는 행위만이 내겐 삶의 확신이다. 그 시간이 없다면 내 하루는 부유하는 물처럼 썩은 냄새만 가득 찬 곳이 될 것이다.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는데, 아득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샤워하고 허겁지겁 나와 밤공기를 한숨 들이마시니 만사가 태평해졌다. 육체와 정신이 완벽하게 호응하는 순간이 빚어낸 기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