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저자, 황국영 역자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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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느 시점까지는 그런 대중적 이미지를 바꿔보려 애썼지만, 요즘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그런 일에 귀중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시시한 짓이다’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딱히 다른 사람들의 인지를 바꾸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삼을 마음도 없고, 담담하게 스스로 만들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만들어가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최후의 한 곡이 반드시 좋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사카모토 류이치=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런스’라는 프레임을 깨부수는 데 제 마지막 삶의 목표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목적을 위해 남겨진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죠. 이런저런 생각의 변천을 거친 지금, 이것이 저의 거짓 없는 심경입니다.



...저는 괴롭고 힘든 치료를 거부하고 최소한의 케어만으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가치관을 조금 더 허용하는 세상이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위스나 네덜란드의 합법적 안락사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방사선 치료와 외과 수술을 받고 화학 치료까지 병행하려는 스스로의 모습에 모순을 느낍니다. 신체보다 의식이 훨씬 보수적이라는 사실에 고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스럽게 살다 자연스럽게 죽어가는 것이 동물 본래의 순리이자 생명 본연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인간만이 거기에서 벗어나 있죠.



...분명, 이 풍경은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재’(非在)의 감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겠죠. 블루스는 19세기 후반, 강제적으로 미국에 끌려갔던 흑인 노예들이 만들어낸 음악 장르인데, 신기하게도 그들의 출신지인 아프리카 국가에는 정작 블루스 같은 음악이 없습니다. 이미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죠. 그래서 저는 향수의 감각이야말로, 예술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문득 커다란 캔버스에 굵은 붓으로 짧은 선 하나를 그어낸 이우환 선생님의 페인팅 작품이 머릿속에 스쳤습니다. 아마도 인간의 뇌의 습성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 무심코 반짝이는 점과 점을 이어 별자리를 그리곤 합니다. 실제로 그 별들은 몇 만 광년씩 떨어져 있을 텐데, 마치 같은 평면상에 있는 것처럼 인식해버리죠. 마찬가지로, 새하얀 캔버스에 하나의 점을 찍고, 두 번째 점을 찍으면 우리는 또 그 두 개의 점을 직선으로 이어냅니다. 거기에 세 번째 점을 찍으면 이번에는 삼각형을 만들어버리고요. 이는 음악에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레버넌트〉의 메인 테마를 예로 들자면, 시작할 때 울리는 그 두 개의 음만으로도 우리는 의미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에서 촉발하여, 저의 새로운 앨범에서는 모든 사물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뇌의 습성을 부정하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어느 때보다 음악과 예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는 식의 직접적인 의미로가 아니라, 정치로부터 자립한, 보편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언정 지속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무언가가 필요했죠. 뒤이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그랬듯, 세계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음악과 예술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큰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정치가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요.


..결코 넓지 않은 우리 집 정원에는 피아노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2015년, 요양을 위해 방문했던 하와이의 풍토가 마음에 쏙 들었던 저는 그때의 기분으로 기세 좋게 중고 주택을 매입했는데, 그 집에는 거의 100년 전에 만들어진 피아노가 있었습니다. 정작 그 집은 큰 미련 없이 팔았지만, 시간이 묻어나는 낡은 분위기가 어찌나 근사하던지 피아노만은 뉴욕 자택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시험 삼아 피아노를 마당에 그냥 놔둬보기로 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수차례 비바람을 맞으며 도장도 다 벗겨진 지금은 점점 본래의 나무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어떻게 썩어갈 것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나이 먹어 가야 하는가, 하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사카모토 씨가 음악을 맡은 1990년의 영화 〈마지막 사랑〉의 마지막에 등장한 원작자 폴 볼스가 내레이션처럼 읊조리던 말의 일부였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모르니 우리는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무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극히 적은 횟수밖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어린 시절의 그 오후를, 앞으로 몇 번 떠올릴까? 그것이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깊은 곳에서, 지금의 자신의 일부가 된 그 오후마저. 아마 앞으로 네 번, 혹은 다섯 번일 것이다. 아니, 더 적을지도 모른다. 보름달이 뜨는 것을 보는 일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아마 스무 번이려나. 그리고, 그럼에도, 무한한 횟수가 있다는 듯 생각한다.’



...스— 씨,
아까 말하는 걸 잊었는데 하이쿠 시인 도미자와 가키오의 대표작은 “나비의 낙하/그 소리 크게 울린/얼어붙은 날”인데, 굉장한 것 같아요.정말 놀라웠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이것이 내 앞으로 도착한 마지막 메일이었다. 20일 후…, 나비가 아닌, 사카모토 씨가 낙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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