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읽는 법 - 코넌 도일, 레이먼드 챈들러, 움베르토 에코, 미야베 미유키로 미스터리 입문
양자오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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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두 알 것이다. 차이의 핵심은 소설에 무엇이 쓰였느냐가 아니라 독자가 소설에서 무엇을 읽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러니까 소설을 읽기 전에 이런 소설에서 무엇을 읽게 되리라는 점을 알고 있는가에 있다. 그리고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자신의 소설을 읽을 사람이 어떤 예상과 기대를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가늠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장르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진 작가와 독자 사이의 묵계다.


...코넌 도일은 세심하게도 전지적 시점과 일인칭 시점 사이, 객관과 주관 사이에 놓이는 신선한 서사 방법을 발명했다. 소설의 문장과 사건 기록은 모두 왓슨의 시점을 거친 것으로 주관적 판단과 강한 호불호가 뒤섞인 그의 정서가 독자에게 전달되어 독자의 마음에 스며든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홈스의 사건 조사와 모험 과정을 알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왓슨과 함께 경험한다.


...또 다른 즐거움도 있다. 홈스가 쓴 추리 수법은 기본적이고 일반적이다. 코넌 도일에게 추리의 기본 게임 규칙을 세울 자유가 있었던 덕분이다. 나중에 추리소설을 쓴 사람은 모두 코넌 도일이 세운 규칙을 지키는 한편 추리 수법에서 홈스를 뛰어넘을 아이디어를 궁리해야 했다. 따라서 이후의 추리소설에는 ‘셜록 홈스 시리즈’에서 보이는 어떤 단순함을 담기 어려웠다. 그 단순함이란 일반 과학 원칙과 경험 법칙에 의지하며, 지나친 기교를 부리거나 독자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 연막탄을 피울 필요가 없고, 이야기의 흐름이 간결하며, 작가가 스스로 생각한 수수께끼에 의기양양함이 없고, 작가가 독자를 도발하거나 조롱할 일이 없는 것을 말한다.


...챈들러는 이런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일은 재미있지 않지만, 그가 아주 하찮은 것을 위해 죽고, 그의 죽음이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것의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는 이따금 재미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챈들러는 설령 소설에서라도 한 사람이 죽어 버리는 일이 오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해밋의 생각에 찬성하고 호응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 기록될 만하고 대답을 구해야 할 일이라면, 그 죽음은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고심하게 할 만한 문명의 의제에 닿아야 한다.


...그들이 소설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대지’ 관점으로 힘들고 성실하게 얻은 결론이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읽은 사람은 안다. 소설이 아무리 멋지고, 마음을 잡아 끌고, 우리 자신을 다른 세상으로 이끌더라도,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숙제하라고, 자라고 말씀하시면 그 상상의 세계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어쨌든 표지를 덮고, 밥상의 밥과 반찬을, 무료한 물리 공식을, 어수선한 이부자리를 마주해야 한다...소설을 읽는 사람은 매혹적인 상상의 세계와 지루하기 짝이 없는 현실 세계를 드나드는 데 익숙하다. 소설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소설을 읽는 경험에는 이런 드나듦이 반드시 포함되며, 오늘 자기 전에 덮었던 책을 내일 방과 후에 열어 계속 읽어 나간다... 소설을 읽는 사람은 이토록 멋진 장면을 몇 번이고 드나드는 경험을 풍부하게 쌓는다.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은 이런 경험이 없다. 다시 말해, 그들은 매혹적인 허구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미국 청교도는 진정으로 죄악sin을 인정하며, 이 개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현대 사회는 급속히 세속화하여 guilt(죄악감)와 sin(죄악)을 분리해 하느님이 관여하는 죄악sin을 잊어버리고 인간의 도덕과 법률상의 죄악감guilt만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이 미국에서는 더디게 진행되어 완성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하고 발전이 빠른 나라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진보가 가장 더딘 사회다. 미국인은 범죄추리를 단순한 지능 게임으로 여기지 못하며, 각각의 범죄 행위를 원죄와 죄악감으로 연관 짓고 속죄 문제로 끌고 간다. 그들에게 범죄는 너무 엄중하고 엄숙해서 추리의 즐거움을 위해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상상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범죄는 그들이 가진 일련의 심리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은 궁극의 존재가 가진 깊은 무게감을 무엇보다 진실하게 여긴다.그리하여 미국 독자를 움직일 수 있는 탐정추리소설은 정신과 존재에 무게가 있어야 하며, 죄악감에 진실성이 있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하드보일드 맨’이 갖춘 근본 역할이다.


...『장미의 이름』은 역사가 들어간 추리소설도 아니고, 추리가 들어간 역사소설도 아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역사추리소설이다. 그 추리는 특수한 역사 배경 아래에서만 성립되는데, 뒤집어 말하면 시대의 특수한 믿음과 풍습이 살인 사건과 추리를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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