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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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자유나 사회적 자유 등의 다른 자유가 경제적 자유와 충돌을 일으키면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경제적 자유를 우선순위에 둔다.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살인을 일삼았던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 정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것도 바로 이런 사상적 배경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들은 피노체트 정권 때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라고 부르는 경제학자들의 도움으로 시행했던 자유 시장 정책이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사회주의’ 정책으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보호한다고 믿었다.


...규모가 큰 생산, 복잡한 테크놀로지, 국제 규모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19세기 말 이후의 환경에서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노력—개인의 노력보다—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기업의 리더뿐 아니라 노동자, 엔지니어, 과학자, 전문 경영인, 정부의 정책 입안자, 그리고 심지어 소비자의 노력까지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다양한 개념의 자유가 존재하는데, 그 모든 자유가 논란의 여지 없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인 양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자유 무역에서 ‘자유’라는 개념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거래가 해당 정부의 규제(예를 들어 수입 금지 조치)나 세금(예를 들어 관세)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자유 무역 1기(19세기와 20세기 초)에 ‘자유’ 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나라들, 다시 말해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 등으로 자국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한 나라들에서만 행해졌다. 국가들 사이에 형식적인 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인 현재의 자유 무역 2기에서조차 자유 무역은 모든 당사자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주지 못한다. 국제 무역의 규칙이 강한 나라들에 의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다국적 기업이 진출한 나라에는 그 나라의 나머지 경제와 별도로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들이 이른바 ‘스크루드라이버 오퍼레이션screwdriver operation’이라 부르는 조립 작업만 하는 방식으로 섬처럼 존재하는 ‘엔클레이브enclave’ 현상이 벌어진다. 지역 기업들에는 거의 하청을 주지 않고 대부분 수입된 부품을 완제품으로 조립하기 위해 그 지역의 값싼 노동력만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얼마간의 단기적 헤택이 있을 수 있지만(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 지역 기업에서 구입한 낮은 기술 수준의 부품 등), 다국적 기업의 진출로 인해 거둘 수 있는 진짜 혜택(고급 기술의 이전, 선진적 경영 관행, 더 나은 기술과 테크놀로지를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습득하고 훈련받을 기회)의 대부분은 현실화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개발도상국들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보호 무역, 보조금, 외국인 투자 규제 등을 주도하는 정부의 지원과 보호 아래 자국의 생산자들이 ‘성장을 해서’ 생산성이 더 높은 산업 부문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신자유주의 전통에서는 완전히 부인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워싱턴 기구들이 제시한 ‘정책 권고 사항’들은 ‘쿠키 커터cookie cutter’접근법이라는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로 천편일률적인 내용이었다. 나라마다 다른 경제 상황이나 정치사회적 환경과 상관없이 똑같은 정책을 제시하고 거기에 따르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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