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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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떤 소설이 되었든,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것이 모두 허튼소리라는 것을 숙지해야만 하며, 그러면서도 읽는 동안에는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그 소설을 다 읽었을 때, 훌륭한 소설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읽기 전과 조금은 달라졌음을, 조금은 바뀌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이전에 전혀 가본 적 없는 낯선 거리를 지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달라지듯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하기’란 아주 어렵다. - < 어둠의 왼손, 어슐러K.르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중에서

모든 소설은 은유이다. SF는 은유이다. SF가 기존 소설과 다른 것은, 우리 동시대 삶에서 커다란 지배력을 가진 것들, 즉 과학, 모든 과학과 기술과 상대주의적이고 역사적 견해들로부터 가져온 새로운 은유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여행은 이러한 은유 가운데 하나이다. 대안 사회나 대안 생물학도 그렇다. 미래 또한 그렇다. 소설에서, 미래란 은유이다. - < 어둠의 왼손, 어슐러K.르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중에서

겐리.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무엇이 확실하며 무엇이 예견 가능하고 무엇을 피할 수 없습니까? 당신이 당신의 미래에 대해, 그리고 제 미래에 대해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대답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겐리.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인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영원히 우리를 괴롭히는 불확실성,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무지’입니다.” - < 어둠의 왼손, 어슐러K.르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중에서

고려할 점: 이른바 인간성에 대한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 즉 보호적/피보호적, 지배적/순종적, 주인/노예, 능동적/수동적 따위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인간의 사고방식에 만연해 있는 이원론 경향의 정도가 겨울에서는 낮거나 둔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 < 어둠의 왼손, 어슐러K.르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중에서

어떻게 개인이 한 국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티베는 그런 말을 합니다만 저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알고, 도시, 농장, 언덕, 강, 바위들을 알고, 가을이 되면 언덕 위의 어떤 경작지 위로 어떻게 해가 지는가를 압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경계를 긋고 이름을 붙인 뒤 이름이 적용되지 않은 곳은 더는 사랑해선 안 된다니 말이 됩니까?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기 나라가 아닌 곳은 미워한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그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냥 자기애입니까? 그건 좋지만 그게 미덕이 되거나 직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제 삶을 사랑하는 만큼, 저는 에스트레 영지의 언덕을 사랑합니다. 그런 종류의 사랑에는 증오의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제가 무지하기를 바랍니다.” - < 어둠의 왼손, 어슐러K.르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중에서

“음, 한다라에서는…… 아시다시피, 이론이나 교의 같은 것이 없습니다……. 아마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한 생각도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살아 있는 생명이 그 일부를 이루는 전체와의 유사성, 상관성에 더 주의를 기울이지요.” <토르메르의 시>가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아 나는 그 시를 읊었다.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함께 있다.
  케메르를 맹세한 연인처럼,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 < 어둠의 왼손, 어슐러K.르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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