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10 - 완결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힘든 여정의 터널을 넘어서

완결된 만화책 리뷰를 쓰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만화책이라 해서 내용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그림이기 때문에 만화의 한 장면을 글로 묘사한다고 하면 그림이 차지하는 지면크기보다 글로 채어진 공간이 더 크다. 그림은 글보다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많지만 문제는 우리 인식에 그림 중에 만화는 그 대상에서 제외대곤 한다. 뭐, 학습 만화는 교육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전제 한에서 학부모들에 의해 힘이 실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만화 [모래시계]는 마치 [빨간 머리 앤]과 같은 아름다운 성장기를 담고 있다. 물론 소설 [빨강머리 앤]과 내용이나 캐릭터가 비슷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만화는 소설 [빨간 머리 앤]이 주는 따뜻한 감동의 어느 면이 전해진다.

 

순정만화 공식을 벗어난 소설 같은 만화

도쿄에서 살고 있던 초등학생 안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하였다.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에 내려와 살게 된 안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말썽꾸러기 다이고와 부잣집 도련님 후지를 만나게 된다. 밝고 명랑하고 씩씩한 다이고와 어린 나이에도 꽤나 쿨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후지는 어린 마음의 소유자인 안에게 반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순정만화에서 볼 수 있는 공식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안의 우울증에 불안한 안의 어머니는 자살의 하게 되자 안은 겉으로는 밝지만 점점 어머니에 대한 애증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청소년기를 맞게 된다.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안과 그녀를 감싸주는 다이고 그리고 쿨한 이미지와 달리 애달프게 기다리는 후지, 다이고를 사랑하는 후지의 여동생 시이카, 이들 넷의 이야기는 꽤나 자세하고 디테일한 감정에 대한 표현과 고민 등이 학창시절을 넘어 대학시절까지 이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사각관계로 이어진 이들의 애정전선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만화처럼 꼭 이들 넷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계속 관계를 계속해가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전부 모일 때도 순간이고 어느 누군가가 해외로 가거나 하지만 서로를 위해 거리를 두는 시간도 많다. 오히려 중학교까지 함께 했던 이들의 짧지만 밀도 깊은 추억이 이들의 관계를 낚시 줄을 다시 던져 강의 수면에 닿는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그래서 끈적끈적하게 관계에 집착하는 어느 만화나 통속 드라마와는 달리 보인다. 8권까지는 안과 다이고가 어렵게 다시 만나서 결혼에 이르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물론 그들의 만남이 계속되는 가운데 엮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만화의 제목인 [모래시계]에 의해 우연히 다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재확인하면서 그들은 엮어진다. 은은하게 전해오는 그들이 마음 속 소리와 겨울에 촘촘한 눈이 천천히 내리는 것 같은 만화체가 너무나 잘 어울려 글로 읽어서 내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세계보다 더 아름답다.    


빨강머리 앤의 그 다음 이야기가 사랑받는 것처럼...

만화 [모래시계]는 8권이 완결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9권과 완결권인 10권은 번외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기 작품이 같은 의무감이라고 해야 할까. 이 만화는 잔잔한 감동과 만화인데도 서정적인 진행과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코드 덕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후속편 혹은 번외편을 기대하는 이유는 독자들의 요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빨강머리 앤]은 처음에는 앤이 선생님이 되는 내용까지 담았지만 그 뒤에 나온 후속작품에서는 앤의 손녀 이야기까지 나오는 대하소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독자들은 앤의 이야기뿐만 아이라 그 이후의 앤의 삶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다. 작가 루시모드 몽골메리의 뛰어난 스토리와 서정적인 문체 그리고 앤이라는 귀엽고 사렁스런 캐릭터와 주변 인물이 탄탄했기 때문에 21세기 현재까지도 소설 [빨강머리 앤]은 사랑 받고 있다. 감히 명작 소설과 비교한다는데 불쾌한 이도 있겠지만, 만화 [모래시계]의 번외편도 본편에 뒤지지 않는 감동 파워를 선사한다. 9권에서는 안의 가족이야기와 시이카의 사랑 이야기를 10권에서는 다이고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맡은 제자들과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다시 만난 다이고의 초등학교 선생님과 얽힌 스토리는 자신의 신념과 과거의 상처를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는 큰 용기와 힘을 실어준다. 당시 10살이었던 다이고가 묻고 싶었던 것은 ‘겁쟁이 반납’을 30살이 된 다이고가 다시 열어보았을 때 추억들 그리고 앞으로 50살이 되어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열어 볼 타임캡슐을 묻어 둔 나무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 살며시 웃게 된다. 과하지도 지나치지도 않는 번외편인 두 권은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자칫 풀어질 수 있는 과오를 덮는 것을 넘어선 훌륭한 내용이었다. 


명대사

지금의 우리와 미래의 우리를 이어주는 건 [기억]뿐일까?

최대한 기억이 퇴색되지 않도록 뇌세포를 단련할거야

지우고 싶은 가슴 아픈 기억도. 잊고 싶지 않은 행복의 추억도

난 전부 소중히 간직할 거야.

 

세포가 전부 바뀌어버리기 전에 몇 번이고 반추할 거야.

행복과 반성을 음미할 거야. 그런 노력을 할 거야.

그것은 미래를 믿는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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