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밀리언 달러 초콜릿
황경신 지음, 권신아 그림 / 북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작가에 대해 전혀 사전지식이 없는 나는 글이 알쏭달쏭하다. 작가로서 그냥 글을 쓴 것인지... 자신의 글을 썼더니 작가가 된 것인지... 조금 알아듣겠다 싶은 순간, 다시 저~~~~~~~~~~~~~~~~~기로 멀여져 간다.
책을 읽다보면... 광화문 사거리에 홀로 서서 수 많은 움직임을 그저 하릴없이 지켜보는 동상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혹은 고속도로 진출입로의 중간쯤에 서서 나를 기억하는, 나를 찾는 사람들의 반가움을 언제까지나 기다려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느낌의 공통점을 막연함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러나 희망보다는 쓸쓸함과 허무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끝없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막연함.
어쩌면 글은 가을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세차게 부는 바람을 끝내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를 그저 바라보게 만드는 가을. 죽음을 맞이하는 슬픈 가을이 아니라 다시 또 만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가을. 그래서 아쉽지도 안타깝지도 않은 가을. 그러나 희망적이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을. 누구에게나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닌 가을.
아무도 모를거라는 그녀의 이야기가 때로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리게 만들어주는 힘. 같은 장소, 같은 사건, 같은 사실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생각을 이끌어주는 힘이 작가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걸까. 아, 멋있어. 라고도 할 수 없고, 아, 시시해. 라고도 단정지을 수 없는 묘한 힘을 내뿜는 알쏭달쏭한 글.
내 삶을 위해 분투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쪽이 항상 좋은 거라고 믿어왔어.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건 다른 사람의 인생도 아니었어. ...... 너한테만은 거절당하고 싶지 않거든. ... 알아, 하지만 네가 너 자신을 찾게 되면,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 (49쪽)
나는 이 글이 슬프다. 작가는 왜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현했을까. 슬픔이 더 잔인하도록...
이 세상의 어떤 현악기도, 느슨하게 조율된 상태에서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 대해 더욱 까다로워져라. 당신의 영혼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길 원한다면 누군가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170쪽)
명쾌하게 전해주는 몇 안 되는 글 중에 내 머리에 쏙 들어오는... .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고르고,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는 것, 그것이 선물을 주는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이다. (59쪽)
알록달록 예쁜 엽서에 씌여진 두 줄의 인사말보다 A4용지 위에 볼펜똥 묻히며 적어내려간 편지를 내가 더 좋아하는 이유... 편지를 쓰는 동안 떠올렸을 우리들의 시간과 우리들의 언어에 대한 달콤한 상상.
지난 시간들에 대한 쓸쓸함을 편안하게 추억하고 싶은 분들께 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