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완역본

제2의 성 ㅣ 을유사상고전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담론, 갈등이 오가는 현재. 고전 완역본을 펴내주신 출판사의 결심이 정면돌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역사 깊은 출판사의 결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던 출간소식이었다.

여성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해놨다. 여성학 교과서라 할만 하다.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2부 <체험>파트였다. 실제로 사르트르와 계약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동성애, 이성애를 갖었던 저자의 생각이 실체적으로 녹아있는 듯 했다. 여성에 대해 유년기부터 노년기, 직업과 상황에 따른 케이스를 자세히 분석해놨는데 챕터는 많지만 밀도가 높다.

새로 출판된 완역본이라 문장은 잘 읽힌다. 물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고전이라는 편견과 두께에 선뜻 도전하기 쉽지 않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치만 다 읽어야겠다는 마음보다 목차보고 끌리는 대로 천천히 곁에 두고 읽어도 좋겠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보부아르 #여성학 #고전

굿

나의 뇌는 나보다 잘났다 -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뇌 과학
프란카 파리아넨 지음, 유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9월

생각보다 진지한 뇌과학 이야기. 가벼운 심리에세이인가,하며 집어 들었는데 깊이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흥미진진한 테마 인문학

피싱 - 인간과 바다 그리고 물고기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6월

요즘 예능 하는 낚시가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찍고 있다. 태어나서 낚시라곤 한 번 밖에 해본 적이 없고, 낚시대의 ’손 맛’도 모르는 나는 항상 그 프로그램을 보며 궁금했었다. 대체 낚시가 주는 재미는 뭘까. 낚시가 뭐길래?

이 책을 펼쳐든 것도 사실 단순 호기심이었다. 낚시로 풀어낸 인문학이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자는 속셈이었다. 사실은 가벼운 책은 아니었지만ㅎㅎㅎㅎ(두께도, 내용도!)

테마를 잡아 역사를 기술한 점도 신선했고, 그 테마가 고기잡이라는 것도 신선했다. ’고기잡이’가 인류역사에 이런 영향을 주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해봤기에 읽는 내내 흥미 진진했다. 두께가 좀 있는 편이지만, 고대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역사의 핵심만 짚었다고 생각하면 두꺼운 편도 아니라 생각이 든다.

혼자 읽기 보다는 북토크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듣거나 여럿이서 읽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회식으로 스시나 생선구이 요리를 먹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의 영향을 받고 살고 있다

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이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을 3가지 해시태그로 정리한다.

#건축과 대중을 잇는 건축가, 유현준

 <알쓸신잡2>를 보며 유현준 교수는 상상력이 있는 건축가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건축에 대해 쉬운 말로 풀어내는 건축가는 많지 않다. 예술가 같은 건축가들은 많지만, 대중과 호흡하는 건축가는 많지 않다는 뜻이다. 건축가의 글도 마찬가지다.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건축으로 설명해야지, 글 쓰려고 건축하냐'는 얘기를 많이 하니까.

 일단 재미있다. 나는 유현준 작가의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진 않았으나, 연장선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흥미로운 주제들로 가득한 점도 이 책의 특징이다. 예를 들면, '현대인이 SNS를 많이 하는 이유', '왜 쇼핑몰에 멀티플렉스가 생겼을까'등 건축과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잇는 주제들을 흥미로운 해석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건축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는 이들도 각자의 이야기로부터 책을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건축의 역사부터 미래 도시까지 #건축입문서+건축인문서!

 재미있다는 뜻이 곧 가볍다는 뜻인 것 만은 아니다. 고대인들이 '집'을 짓고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데서 부터 '건축'이 생겼다. 이 책의 이름은 '어디서 살 것인가'이다. 고대인들부터 현대인들의 집 더 나아가 도시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건축 인문서이다. 수많은 역사 속에서 보존 또는 발전되어온 인간 생활 양식에 대해 설명한다. 대중 건축학개론이라고 설명해도 모자람 없는 책이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의 영향을 받고 살고 있다

 서울에서의 삶에서 우린 '혼자'가 익숙해 보인다. 혼자 살고, 혼자 먹고, 혼자 영화를 본다. 모두 내가 혼자 있기를 택한 삶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위 해시태그 문장처럼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혼자이길 택했음에도 더 많은 것의 영향을 받고 살고 있다. 내가 혼자 살며 느끼는 감정, 생각, 생활 패턴은 어쩌면 도시의 모양에 의해 선택된 삶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들은 도시 공원에 대한 이야기다. 뉴욕에서 좁은 집에서 사는 것과 서울에서 좁은 집에 사는 것의 삶의 질 차이가 공원에서 온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못했다. 새로운 발상이다. 그게 혹 유현준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해도, 나는 이 말을 믿고 싶다. 

 유현준 작가는 도시에서 사람들끼리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닫혀 있는 건물을 터서 개방된 공간을 만들고, 빠르게 변하는 도시 시간 사이에서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옆에 있는지, 사람들이 뭘 하고 사는지 생각할 틈도 없는 도시살이에서도 우리는 서로 눈을 보고 대화하고 함께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린 그런 도시를 가질 수 있을까. 유현준 작가의 이 책이 우리의 인식을 깨트리는 돌멩이가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