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가끔씩 학원에 학교 공부에 친구들과 뛰어놀 시간없이 공부에만 찌들어 사는 아이들 볼때마다 나도 서울을 훌훌 떠나 시골로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때가 있다. TV에서 보여주는 시골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보면서 자연속에서 배우는것이 진정한 삶의 진리가 아닐까...나도 내아이를 저런 자연과 하나가 되어 계절을 즐기고 맘껏 나래를 펼칠수있다면 하는...동경아닌 동경을 해보곤한다. 지금도 가끔씩 어릴시절을 생각해보면, 아버지 전근따라 서울 언저리에 살았던 어린시절은 이름은 서울이지만 시골못지 않은 곳이였다. 200평 대지위에 건물100평 의 집에서 살았던 나는 동네에서도 손꼽힐만큼 여유롭게 살았는데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언덕위의 하얀집이라고 불렀다. 말이 언덕이지 보기 좋게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아름드리 오동나무가 계단길따라 가로수로 심어져있었고 마당 끝가엔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한여름엔 달큰한 향기와 함께 그늘을 드리워 줬다. 일본식 집에 살았던 우리집은 여름엔 시원하기 그지 없어 마을사람들이 모여들곤 하던 곳이였다. 건녀편 마주 보이는 집빼놓고는 대부분 집들이 우리집 계단 밑쪽에 위치해있었으니까 사람들은 언덕위의 집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야산과 중산자락에서 아이들과 함께 봄에는 진달래꽃을 따먹고 산딸기와 칡뿌리도 캐어봤다. 또 아버지는 은행엘다니 셨는데 집에서 가까운곳에 꽃밭처럼 이쁘게 가꾸셨던 텃밭에 시시때때로 물을 질러 나르기도했다. 그시절에도 그런일이 욕심이 생겨선지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생각해도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넓은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어느 시인의 집처럼 우리집은 실개천이 지즐거리는 안지만 들판가에는 샘이 있어서 동네사람들은 이곳에서 빨래도 하고 필요하면 먹는 물도 길어다 먹었다. 나 어릴땐 먹을것도 변변치 않아서 어린시절 조카 분유가루를 몰래 한수픈 두스푼 훔쳐먹던일 미원이 설탕인줄알고 한숟가락 움푹 떠서 먹었다가 혼이 났던일 막걸리를 담그고 남은 술찌거기를 먹고 술에 취해 잠자던일.. 이모두가 생각해보면 아름답기 그지 없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봄되면 온통 멀리보이는 앞산이 진달래 개나리꽃으로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루고,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곳에...'노래부르며 테니스장에 오르곤하던 한 은행직원의 노랫소리가 지금도 들리는듯 하다. 나의 어린시절 추억은 이토록 서정적이고 아름다운데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 어떤가...? 거북이북스의[영산강 아이들]을 읽으면서 새삼 어린시절추억이 아련해져온다. 전남 무안인 고향인 작가 오영해 선생님은 어린시절 영산강변에서 사셨다고 한다. 이 책은 영산강아이들의 겨울이야기를 소재로 겨울이면 고드름따먹고 비료포대를 들고 나가 해가 질때까지 눈썰매를 타는 모습이 정겹게 만화로 그려져 있다. 그속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의 속깊은 정도 꼭 내 아버지, 할아버지의 정과 사랑처럼 느낄수 있었다. 한겨울 친구와 어울려 밤을 구워먹다가 밤이 튀는 바람이 묶어놓은 송아지도 우리를 튀쳐나가 전쟁아닌 전쟁을 치뤘고 얼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딱치 치기 하던일, 잃었던 딱지 때문에 속을 앓기도 하고 누나의 사회과부도책으로 왕짱 딱지를 접었던 일은 마치 나의 어린시절처럼 느껴져왔다. 그옛날 한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다리밑에서 주워온 아이'이야기,한겨울 수직으로 깊게 뿌리내린 칡뿌리를 캐던일 꿩을 잡으려다 할아버지 한테 혼난 주인공 영해의 몇몇이야기는 나이 어린시절과 흡사했다. 책을 보면서 다시 어린시절 오염되지 않았던 자연만큼이나 순수했던 어린시절 추억에 젖어볼수 있어 행복했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급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은 경쟁력속에서 버티려면 어쩔수없이 공부에 파묻혀 살아야 하는 숙명도 있지마는 한편으론 나의 어린시절과 견주어 보면 가엾기 그지없다. 서정적인 어린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요즘 아이들과 내아이에게 [영산강 아이들]을 통해 대신 고향의 서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