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달라는 군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지 '라며 프랑스 귀족이나 성직자들의 이런 안일함이 프랑스혁명의 원인이 되기도 한데 나폴레옹이 혁명을 진압,혁명정신을 유럽전역에 퍼트리는 결과를 낳았다는건 너무 잘 알고있다. 나폴레옹을 모델로한 그림들 속에 단추를 풀고 배를 만지듯히 손을 넣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수 있는데,
속병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 나폴레옹 이 그려진 그림은 정복자다운 늠름한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노새를 타고 키도 작고 외모도 뛰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또 병사들을 진두지휘한게 아니라 먼저가 병사들을 몇일뒤에 따라갔다고 한다.
정복자다운 영웅다운 모습이 사람들이 기대하는 위대한 정복자다운 이미지를 그려야 더 훌륭한 초상화로 여겼다는 그시대 덕분에 나폴레옹은 늠름하게 그려진것. 이시대는 실제 이미지보다 왕은 우러러볼수 있게 더 왕답게 정복자는 더 영웅답게 그렸다는것
또 해부학이 교양과목쯤으로 여겨졌던 시대라고 하니 알아갈수록 흥미로워지는 더힙한 미술관 그림이야기다.
순교자의 언덕이라 불라게된 파리의 몽마르트가 오늘날 예술가들의 성지로 알려지게된 역사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삶은 불행했지만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 해석하면 갈레트가 있는 풍차 집이라는 풍차가 배경이 된 이그림은
그가 이집의 단골이였으며 다른 유명화가들도 이 무도장을 소재로 작품을 남길만큼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주는곳이란것
또 몽마르트른 19세기 중반에 파리 시내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종로 어디쯤에 한태 물랭루즈라는 곳이 있었는데 물랭루즈는 그당시에 몽마르트에 있던 무도장으로 1889년 사교계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기계문명의 발전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프랑스 화가 레제의 작품이 이색적인데
1900년대 건축사수소에서 설계사로 일하다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노동자의 유급휴가가 초기
자본주의때 시작되었다니 놀라웠다.
문학이 시대(사회)반영을 하듯이 그림 또한 그렇다. 피카소는 처음 화가가 되었을때보터 사회적으로 소외 받늬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게르니카 인데 전쟁의 참혹한 실상과 잔인함을 고발한 작품으로 프랑코의 잔인한 만행을 그림으로 고발 역사를 알고 이그림을 다시 감상합니 당시 스페인 게르니카 마을의 폭탄소리와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리는듯하다.
서양미술을 보면 그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더있을거 같아서 미술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좋아해서 전시는 짬짬히 다녀오고 미술관련도서를 다양하게 읽어보았지만 [더 힙한 미술관]에서 최초로 알게되는
역사적 배경에 얽힌 비밀스런 그림이야기가 흥미롭다.
#더힙한미술관
#장세현
#이론과실천
#뮤지엄
#미술역사
#명화미술관
#초상화
#정물화
#종교화
#풍경화
#우아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