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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것들의 도시 ㅣ 일인칭 4
마시밀리아노 프레자토 지음, 신효정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잊혀진 것들의 도시- 마시밀리아노 프레자토
샤(Sha)로 가세요. 주인공 나는 누군가의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향한다.
잊혀진 기억의 도시 샤에는 모여든 기억을 다듬어 정리해주는 까마귀가 산다.
그 옆에는 쓸모없는 기억들을 먹어치우는 달팽이도 있다.
지극한 노인의 얼굴을 한 것 같은 샤의 주인 까마귀는 잊혀진 기억들을 정리해 준다. 쓸 것과 쓸모없는 것을 구분하여 날려주고 말을 병에 담아 둔다.
누군가에게 잊혀져 새로 오게된 유령들은 눈물을 먹이로 삼고 옷장에 숨어 산다.
까마귀는 버려진 알들에게는 오래된 사진속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너무나 방대한 양의 장난감들은 숨을 곳이 없어 샤의 꿈속에 보관이 된다.
밤이 되면 샤에 모여진 집들이 각기 춤추며 오래된 집들은 가라앉고 새집으로 대체가 된다.
집들이 자리를 잡으며 요란한 꿈들이 자리를 잡고 까마귀가 그 꿈들에게 인사를 전하며 그제서야 샤는 조용한 도시가 된다.
샤의 주인은 매일 아침 진지하게 기억을 선별하는데 그 주인도 거울 앞에서는 잊혀진 무언가를 보는 것만 같이 멈칫하게 된다. 잠시 무슨 생각에 젖은 듯 하다가 이내 우물 아래 사람들에게 거울을 가져다 주며 잊혀진 그들의 기억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그 반복되는 도시에 작은 행성이 온 날이 있는데 그날은 샤의 반복적인 일상들이 멈추어버렸고 까마귀가 행성의 상처안에 있는 가시를 뽑다가 행성은 폭발하게 된다. 이후 샤의 도시에는 기억의 폭풍이 일어나고 까마귀는 사라지게 된다.
결국 샤에는 내가 남았고 나는 이전의 기억은 없어도 이제는 남아서 그곳으로 모여드는 기억들을 돌보고 있다.
그림도 내용도 굉장히 몽환적이고 어려운 내용인 것 같아서 몇 번을 곱씹어 보았다.
모여드는 기억과 까마귀 달팽이와 가시모양의 똥. 그리고 남겨진 주인공 나 .
기억이란 나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듯 해도 알아서 잊혀지고 남는다.
원한는 기억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기억도 남아 나에게 가시똥과 같은 마음의 생채기로 남아있다. 기억은 재단해나가는 듯 하여도 결국은 어느 순간에 사라지고 어느 순간에 치유가 된다.
그림이 내내 어둡다. 그 지나간 깜깜한 과거 속에 서 있던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기엔 겁이 난다. 나를 만들어온 나의 과거가 긍정적인 기억의 아주 좋은 것들만 있는 것들은 아니므로. 그러나 어느 순간 받아들이며 그것이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되고 그 기억은 나를 옭아매는 속박된 것이 아닌 자유로운 것이 될 수 있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기억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기억의 정돈자는 나이지만 결국 기억의 정돈자가 내가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처음에는 내 기억을 내가 만들어 오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으나 지나온 기억을 그저 바라보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기억은 그렇게 잊혀지고 지금은 또 다시 기억 속으로 잊혀진다.
남의 나는 지나간 샤의 주인 까마귀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책을 읽는 말미에 문득 나도 모르게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조금 슬퍼지는 것 과 동시에 조금 안도하게 되었다.
이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상상일뿐.
글밥이 많이 없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같고 굉장히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