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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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러시아 작가 '레오니드 치프킨'은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이라는 책 한 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책은 작가가 죽은 지 20년이 지나서야 겨우 출판이 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무명작가가 남긴 단 한 권의 책. 만일 당신이 이 세상에 단 한 권의 책을 남겨야 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택할 것인가? 치프킨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를 텍스트로 삼아 위대한 예술가가 아닌 인간적인 모습에서의 도스토예프스키를 그려낸다. 픽션과 다큐를 넘나드는 메타 픽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을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대담함을 선보인다. 극중 화자인 현재의 '나'와 과거의 '도스토예프스키'를 오고 가는 내면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가 아닌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를 접할 수 있다. 그리하여 책장을 넘기는 내내 한 인간의 남루한 삶 속에서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이 시종일관 환기되는 매우 특별한 정서적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애정 없이는 온전히 교감할 수 없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이 책과 정서적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저서를 탐독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접한 독자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단숨에 이 책에 빠져들겠지만, 이야기체 소설로 접근하는 일반 독자에게는 매우 힘든 책읽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한 인물의 내면을 훌륭하게 펼쳐 보이는 이 책은 다른 어떤 소설과도 비교하기 힘든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 아름다운 여정에 잠시 몸과 마음을 맡기다 보면 형언할 수 없는 내밀한 풍경들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매우 진귀하고도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은 러시아 문학의 저 모든 뛰어난 주제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주제들은 독창적이면서도 속도감 있는 언어에 의해 통합된다. 그것은 일인칭과 삼인칭 사이를 대담하면서도 매혹적으로 왕복한다. 행동과 기억과 회상들은 일인칭 화자의 현재와 삼인칭으로 묘사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과거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순례하는 화자 치프킨의 단일한 현재로 환원되는 것도 아니고, 1867년에서 1881년의 죽음에 이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과거로 통합되는 것도 아니다. 저 과거의 도스토예프스키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더 오랜 과거의 기억과 열정에 시달린다. 현재의 화자는 바로 이 기억과 열정을 호출하는 것이다. … 기나긴 문장과 단락들을 통과하면서 느낌들은 강물처럼 하나로 모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치프킨의 삶이라는 두 편의 서사는 겹쳐진다.

만일 당신이 러시아 문학의 깊이와 매혹을 경험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택하려 한다면, 바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만일 당신이 영혼을 단련하고 당신의 감각과 호흡에 더 넓은 지평을 제공하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지난 한 세기의 소설과 범소설(para-fiction)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며 창조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에 포함시키고 싶다. 

- 수잔 손택의 서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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