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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은 아닙니다만 - 서른 개의 밤과 서른 개의 낮으로 기억하는 '그곳'의 사람, 풍경
남기형 지음 / 도서출판 11 / 2020년 12월
평점 :
푸른 색 배경에 황량한 대지.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한대의 차와 한 사람.
책 표지만 봐도 너무너무 여행책인 이 책은
여행책이 아닙니다만-이라고 말하는 여행책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정말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배낭여행이란게 생각처럼 쉽게 가지지가 않아서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대리만족을 하곤 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소설책과 여행 에세이의 비율이 거의 1대 1일 정도로 많이 읽었다.
소설과 에세이를 제외한 책은 거의 읽지 않으니 엄청난 비율이다!
아무튼 여행 에세이를 자주 읽다보니 나름 취향이란게 생겨버렸다.
가끔 보면 에세이를 위장한(?) 가이드북들이 있다.
거리는 얼마나 되고 몇시간이 걸리며 이것이 생긴지 몇백년이 되었다는 둥.
끝없이 나열되는 숫자와 숫자와 숫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리만족을 원하던 난 그 여행지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져버리곤 한다.
반면에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행 에세이는
저자가 그곳에서 느낀것들.
그날 그곳의 공기, 온도, 냄새, 소리 그리고 그곳에서 들었던 음악들.
하늘의 빛깔과 그 나라 사람들의 눈빛 같은 것들을
저자의 글과 사진 속에서 느낄 수 있을 때.
그 여행이 마치 내가 한 여행같고
저자의 마음에 완전히 동화됨을 느낄 수 있는 에세이를 정말 사랑한다.
아무튼.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바로 이 책 역시 그러한 이유로
정말 너무 좋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배우이자 유튜버이자 여행가이다.
공연이 있을 땐 공연을 하고 공연을 쉴 땐 훌쩍 여행을 떠나는.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장기간 갈 수 없게 된 상황이라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지난 여행의 순간순간을 잊고 싶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글을 읽어보니 배우 특유의(?)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졌다.
문장 끝에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농담같은 말들은
책을 읽으며 혼자 쿡쿡거리게 만들었고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여행 에세이들에 비해 사진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글만으로도 그 순간의 풍경들과 그 순간의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했다.
특히 차를 몰고가다가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을 만나면
차를 세워두고 작은 포트에 물을 끓여 커피 한잔을 타서
커피를 천천히 식혀가며
그 풍경을 마주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는 부분에서는
감탄과 부러움이 마구 솟아나왔다.
'내가 정말 여행을 느끼고 벅차오르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언제나 더 작고, 더 외지고, 더 무명한 곳에서였다.'
-p. 127
가장 인상깊었던 페이지는 바로 이 부분이었다.
노래 가사 사이사이 그날의 기억을 적어나간 부분.
어느 나라의 어느 산이었는지는 독자로써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날 그 새벽 등산을 했던 그 순간에 함께하는 기분이었다.
함께 음악을 들으며 함께 오들오들 떨고,
매일보는 태양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특별했던,
태어나 처음보는 태양을 함께 맞는 기분.
이 부분을 읽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바로 그 음악을 검색했고
음악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읽어봐야만 했었다.
그 순간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어서.
책장을 덮고 참 부럽고 참 멋진 작가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다시 여행을 떠나려면 조금 오랜 기간이 필요할테니
부디 이 책의 후속작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