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소리를 삼킨 아이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양미래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친구와 낯가림이 심한 아이 이야기를 하다
친구에게 '선택적 함구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말을 못하는게 아니라 어떤 요인으로 인해 못하게 된 혹은 안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선택적 함구증'에 관심이 생기던 그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파리누쉬 사니이는 이란의 소설가이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로
첫 번째 소설 <나의 몫>이후 두번째로
이 책 <목소리를 삼킨 아이>를 출간했다.
심리학자 그리고 사회학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소설 속에서는 인물들의 심리상태가 화려한 기교 없이
담백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되고 있다.
또한 이란이라는 나라의 가부장적인 가족에 대해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책 속 <목소리를 삼킨 아이>인 샤허브는 태어난 후 한번도 말을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모두 샤허브가 벙어리라 생각했고
본인조차 자신은 말을 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샤허브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아시와 바비라는 친구를 만들었고
그들과 대화를 하곤 한다.
책 초반엔 샤허브의 화가 난 모습과
그 화의 원인에 대한 복수를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초반을 읽을땐 샤허브가 정말 못말리는 사고뭉치로만 보였다.
그렇게 사고만 치는 샤허브를 엄마인 마리얌은 늘 감싸주었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늘 샤허브를 보호해주었다.
솔직히 같은 엄마라는 입장으로 봤을때 마리얌은 늘 대단해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사고뭉치인 샤허브가 왜 그러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샤허브는 단지 예민했을 뿐이었지 않을까?
게다가 샤허브가 아직 어렸을때 동생이 태어나버렸고
그로인해 받고싶었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느껴버린것이다.
샤허브는 특히 아빠에게서 그러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이 책의 원제가 <내가 아닌 다른 아이의 아빠>인것을 보면 아빠와의 갈등이
샤허브의 '선택적 함구증'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설 중반쯤 샤허브는 자신이 사라져야한다 생각하고
부모로부터 도망쳐버린다.
그리고 그때 샤허브를 보호해주는 한 부부의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그 부부는 샤허브의 부모님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 자신의 일을 행복하게 해내는 모습.
자식들을 사랑한다는게 한 눈에 보이는 부부.
샤허브는 자연스럽게 그 부부에게 애정을 갖게된다.
소설속에서 그 부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샤허브 부모의 문제를 꼬집어내는데
사실 그 부분을 읽으며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란 뿐만이 아니라 현대의 모든 가정들이
샤허브 부모님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을것 같아서였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 늘 돈벌기에 열중이고
집안일과 육아에 지쳐있는 엄마는 늘 무언가에 쫒기고 화가 난 표정이니.
그런 부모의 모습을 샤허브의 외할머니인 비비가 또한번 세게 꼬집어낸다.
그 부분을 읽을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흐르던지.
샤허브의 마음도 이해하고
샤허브 부모의 입장도 이해가 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인 비비는 그들 부부에게
아이를 그렇게 대하는 것 만으로도 아동학대라고 했다.
충분히 사랑해주지 않는 것 만으로도
아이에겐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처럼 아동학대가 빈번한 때에는
어느 부모교육서보다도 이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아빠를 '아라쉬 형네 아빠'라고 부르게 된
어린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마음이 아려온다.
육아에 지쳐있고 자꾸만 화가 나는 부모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하고싶다.
'이 아저씨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아라쉬 형네 아빠가 생각났다.
두 사람은 너무 달랐는데도 말이다.
아라쉬 형네 아빠가 카리미 아저씨처럼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p.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