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전공자다.
요새 인문학이 붐이라고 한다.
내가 학교 다닐때는 인문학 전공자는 진짜 암울했는데...
나도 졸업후 진로에 대해 너무 막연해 힘들었었다.
당시 경영 경제학이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었고 CEO란 인텔리를 의미하는 듯 했다.
취업을 위해 경영학이나 법학 같은 사회과학분야의 복수전공은 거의 필수였고 나도 정치외교를 복수전공하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대학에서의 대우도 인문학은 찬밥이었다.
경영관을 시작으로 사회과학대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법학관도 신축했지만 인문학 건물은 옛건물 그대로였다. 철학과 정교수님도 4분밖에 안계셨다. 유교학교라면서 돈안되는 인문학은 뒷전이라는 아이러니에 개탄스럽기도 했다.
내가 제대했던 2001년에 과내 연중행사로 학술회를 열었는데, 그때 주제가 호서대의 철학과 폐지로 인해 쟁점화된 철학의 위기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 대학에서 인문학도들은 루저의 얼굴들을 하고 있었었다. 더 좋은 과를 가고 싶었지만 학교에 맞추다보니 오게 됐어요 식의 인문학도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며 사실 학부내에서도 철학과의 인기는 바닥이어서 1학년 성적이 좋지 않아도 철학과로 진학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나도 수혜자인듯하다^^;)
강의실에선 진리와 의식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지만 강의실 밖을 나오면 상아탑 안에서만의 관념놀이인가...하는 괴리감을 엄습했다.
돈안되는 인문학...그거 배워서 뭐하는데?
라는 질문들에 씁쓸한 미소밖에 지을수 없었고 스스로에게도 그 질문에 답할수 없었다.
재학중 나는 과외를 구하기 위해 중개업체에 등록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과외가 너무 안구해져서 다시 문의하러 갔다가 정치외교를 복수전공한다 했더니 그럼 진작 정외과라고 하지 그랬냐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누군가 전공이 뭐냐 물으면 대답하기가 싫었다.
십중팔구 철학이 뭐하는거냐? 점보는거냐?
내지는 그냥 침묵...대화단절...의 과정은 많이 겪다보니
대답하고 부연설명하기가 피곤했다.
어쩔때는 길게 얘기하기 싫어 사학과라고 거짓말 한적도 있었다.
인문학 전성기라는 요즘 철학과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인문학도로서의 자부심이 있을까?
내가 지금 새내기라면 어떨까? 예전처럼 철학도라는 것에 대한 편견때문에(그때만해도 운동권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번민하지는 않겠지만 옛날이랑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면 솔직히 인문학이 각광을 받고 있다지만 아직 나의 사고방식으로는 철학 전공에 부합되는 진로는 교수, 교사, 강사, 작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가 굳어가는 나이라 창의적인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문학도들이 내가 상상도 못한 분야에서 비상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