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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 홍승희 에세이
홍승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평점 :
우리는 수많은 이름들에 의해 규정된다. 나라는 인간도 그렇다. 하지만 나 자신도 나를 아직 모른다. 어제는 노랑이었다가 오늘은 파랑이기도 한 인간이다. 그런데 사회에서 혹은 다른 사람들은 하나의 단어로 명명하려 한다. 언어는 표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때론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자꾸 ‘A가 아니면 B다’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다. 이것은 합리성이란 이름 아래 만들어진 일종의 규칙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이들은 가려진다. 동성애자, 그녀처럼 이인증을 겪고 있는 사람 등은 A나 B가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삭제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다. 또한 우리는 쉽게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반항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체계 속에 더 맞춰 살아가려 노력한다. 나는 그녀의 생각이 담긴 글을 읽으며 그녀와 동일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겪는 감정들과 불합리였다. 다만, 각자의 삶에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다. 내 삶에서도 주인공이 아니다. 누군가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고 누군가가 정해준 방법을 따라 하는 따라쟁이다.”_127쪽
그리고 용기를 내 그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 내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할 때, 불합리한 것에 불합리하다고 말할 때 나는 쉽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한번 찍혀버린 낙인들은 아주 깊게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이상하다. 내가 느끼는 대로 말하고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에 아니라고 말하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그리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며 첨언을 하고 기도를 해준다. 그녀의 모든 것이 병리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거기에서 넘어지면 안 된다.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든 것들에 대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의 말대로 너그럽지 않아야 내가 덜 아프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면 ‘나만’ 아프다. 정작 나를 괴롭힌 그것들과 그 사람들은 나에게 고통을 주고도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아프다고 우는 나에게 이상한 사람이라고 쳐다볼 뿐.
“당신이 너그럽지 않으면 좋겠다. …눈물과 비명을 계속 누수시켜 폭력의 세계를 고장 내버리기를.”_167쪽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자꾸 어떤 스티커가 붙는다.”_220쪽
이 이야기는 ‘여자라는 독방’에 있을 때 더욱 심화된다. 나와 같은 여자들은 이런 일들에 대해 부당함을 느끼고 독방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방을 둘러싼 ‘폭력의 세계’를 부수기 시작했다. 이상해져야 한다. 이상해져서 그것이 평범한 것이 되어버릴 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아직까지 피해자가 상처받고 2차 가해를 받는 것이 너무나도 만연한 일인 이 세상에서 독방에 갇힌 사람들은 이상해져야 한다.
“정직한 무지가 서로를 가깝게 한다. 우리에겐 더 많은 언어가 아니라 더 많은 무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무지. 나는 나를 모르듯 당신을 모른다. 삶이 뭔지 세상이 뭔지 몰라서 여기저기 걸어 다닌다.”_152쪽
사람들은 조언이라는 껍데기로 치장한 간섭과 강요를 할 때가 있다. 세상의 시각에서 이상하다고 비치는 나, 너, 우리를 말로 재단하려 한다. 이처럼 사람은 섣불리 자신 앞에 마주한 그 사람을 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래서 그 사람도 모르고, 내 삶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 우리는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해 이런저런 말을 마음에 얹어놓는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일과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아니라고 말하는 일은 다른 게 아니다,”_299쪽
그래서 위의 문장처럼 둘은 다른 게 아니다. 나에게 아닌 것을 하나둘씩 덜어내는 일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일과 같다.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위한 일에 자꾸 자신들의 생각을 섞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를 함부로 재단하는 모든 것들에게 너그럽지 않은 태도로 우리를 지켜내야 한다. 나에게도 희미한 나의 구성 요소들에 대해 다른 사람의 입김이 들어가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