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
필립 한든 지음, 김철호 옮김 / 김영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온 나의 캐리어 무게는 12kg 쯤이었다. 그리고 기내 반입품까지 더하면 무게가 더 늘어난다. 이 책을 여행가기 전에 읽었다면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여행을 다녀온 뒤에 접하게 되었다. 일차원적으로 여행은 내가 일주일 전 다녀온 여행이다. 더 깊게 들여다보면 삶을 여행과 비유할 수도 있다. 책에 소개되는 수많은 은자, 수행자들은 그들만의 여행에서 소지한 물품은 몇 되지 않는다. 그들이 여행을 하면서 지닌 물품이 열 손가락만으로 다 헤아려질 때마다 닫히지 않는 트렁크를 온 몸으로 눌러 잠그려했던 나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직까지 비움의 미학을 잘 느끼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이지만 물질적인 부분에서 자유로울수록 내면에 채워지는 것들은 그보다 더욱 무거운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서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들고 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는 끝끝내 가져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느낀 감정들과 세상을 여행하며 얻게 된 깨달음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배낭에 넣고 다닐 수 있는 것보다 많이 소유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_95쪽 ‘에릭 호퍼’
‘소지’의 사전 의미를 찾아보니 물건을 지니고 있는 일이라고 되어있다. 책 속 인물들은 여행을 떠날 때 아주 최소한의 물건을 갖고 떠났다. 그것들조차 빛이 바랬거나 몹시 때가 탄 것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물질에 경도되면 주위에 빛나고 있는 풍경, 나를 바꿔줄 수도 있는 가치들을 놓치게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 빠트린 것이 없는지 수없이 확인하고 이것저것 챙기기 바쁘다. 여행을 가서도 자신이 들고 온 짐을 지키고 확인하는 데 힘을 쏟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들에 대한 욕심을 걷어낸다면 우리의 마음가짐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런저런 캠프 필수용품을 사고 싶은 유혹이 너무 강해서, 결국 노새 한 마리분 짐이라는 장애를 안고 축복받은 숲을 향해 떠나게 된다. 캠핑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가볍게 떠나라. 짐은 가벼울수록 좋다.” _109쪽 ‘조지 워싱턴 시어스’
짐은 가벼울수록 떠나기도 쉽고 돌아오는 길도 편하다. 그러나 필수용품을 사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는 것부터 힘들다. 머리로는 그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알지만,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비워내 다른 것들로 채우며 나 자신이 가득 차는 여행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것은 여행을 넘어 인생에서도 그렇다. 책에 나오는 피스 필그림, 북극제비갈매기 등은 아주 먼 여행을 떠나면서도 내가 잠깐 외출할 때 가지고 나가는 것보다 더 가벼운 짐을 들고 나선다. 그들에게 그 짐의 가벼움이 가능하다면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한 해에 35,000킬로미터가 넘는 왕복 여행을 하는 북극제비갈매기의 짐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살면서 아무런 짐 없이 몇 만 킬로미터를 몇 번이나 왕복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꼬집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깊게 감명을 받았다. 물론 새와 사람을 동등한 선상에서 비교하긴 힘들지만 그동안 내가 필요치도 않은 짐들에 얽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물질적 욕심을 비워내는 것, 그것이 또 다른 나의 여행이 될 것 같다. 지금 나의 여행에 필요한 소지품 목록을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