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박종대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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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크 슐링크의 작품들은 무심결에 읽다보면 가슴을 덜컹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나온다. 그 문장들을 읽으면 마치 내 인생이 내 뒷통수를 한대 치고 달아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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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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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시처럼 읽힌다. 비오기전 잔뜩 흐린 날씨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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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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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오스터? 몇 년 전부터 서점에 갈때마다 눈팅만 했던 작가. 가끔 책을 훑어보면 빽빽한 본문에 먼저 질리기부터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읽으니까 한번 읽어보자, 읽어보자 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선셋파크’의 광고를 우연히 봤다. 광고에 나온 내용이 마음을 끌었다. 성장소설 아닐까? 그리고 번역가가 송은주?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번역했던 그 작가? 읽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주문했다.

  그런데 친구의 한마디 “야, 너 그 책 못읽어. 폴오스터는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야. 우리는 지루해서 못 읽어.” 괜히 주문했나 했지만 일단 읽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친구의 예상이 빗나가고 나의 예감이 맞았다. 후회는 커녕 폴오스터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친구야, 지루하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첫장 마일스 헬러의 이야기부터 사건이 죽죽 시원하게 나간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비슷한 비중으로 나와서 인물들이 새로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책을 읽는 기분이다.  선셋파크의 4인방 외에 마일스의 부모인 모리스 헬러, 윌라, 메리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야. 선셋파크, 폴오스터의 입문작으로 괜찮은 선택이었어.”

 

 

  마일스. 태어난지 여섯 달만에 어머니가 떠나고, 어머니가 떠난지 20개월 후부터 새엄마의 손에서 길러진다. 새엄마의 아들인 보비도 함께. 열 여섯 살 여름, 보비와 함께 길을 가다 말다툼을 하고 홧김에 보비를 밀쳤는데, 차가 덮쳤고 보비는 죽고 만다. 보비가 죽고 몇년후 마일스는 부모님들의 대화를 몰래 듣고 집을 떠난다.

 

 

    “그들은 그가 부모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5년 동안 매사추세츠의 그 길 위

     에서 형에게 했던 짓에 대한 기억을 내내 끌고 다녔다. 밀쳤던 일과 그 때문에 그들은 질병처럼

     그의 몸과 마음 전체에 퍼져나간 죄의식을 잘못 읽었다. 그는 정말 병든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

     면 정말로 폐쇄적이고, 전혀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쳤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부모에

     게 등을 돌렸다는 뜻은 아니었다. 복잡하고 지극히 예민하여 한없이 관대한 윌라, 다정하고 상

     냥한 아버지, 그는 그런 두 사람에게 그토록 많은 슬픔, 불필요한 슬픔을 안겨 준 자신이 미웠

     다. 그들은 그를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 미래가 없는 아이로 보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 자

     기 앞에 희미하게 맴도는 미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서 다시 그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음을 깨

     달았다. 자기가 그들의 삶에서 영영 사라져 주는 것이 모두를 위해 최선일지도 몰랐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마일스도 홧김에 보비를 밀어버렸는데 그렇게 죽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또 그 일로 7년간이나 그렇게 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살다보면 그 말이 저절로 나오는 고통의 순간들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일은 이미 터졌고 일단 수습부터 해야 한다. 그 일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되는게 아니라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닐까?

 

  모리스와 윌라, 마일스는 보비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서로 너무 사랑해서 상처를 줄까봐 그랬을까? 아니면 가족을 무너뜨리기 싫었을까? 7년동안 연락이 없는 마일스에게 상처를 가장 많이 받은 건 누구일까?  윌라. 윌라는 친아들인 보비는 물론, 낳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인 아들 마일스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윌라는 모리스에게 마일스를 마음에서 지웠다고 울부짖는다. 마일스가 뉴욕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모리스에게 사고 순간을 고백한다. 모리스는 아들의 고백을 윌라에게 전하지만 윌라는 "그 애가 내 아들을 죽였어요.“라고 한다. 그리고 마일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이해하지만, 마일스를 마주할 용기가 없으며, 시간이 필요한다고 한다. 그리고 책이 끝날때까지 윌라와 마일스가 만나지 않는다. 윌라와 마일스가 만날지,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열 여섯 당시 보다 스물 여덟 지금이 새엄마 윌라와 이야기하기가 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은 맞닥뜨려야할 순간, 마일스는 피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윌라에게도 고백할 것이다.

 

편지 한 장 남기고 집을 떠난 마일스는 어떻게 지냈을까?

 

 

       그는 스물 여덟 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에게 야심 따위라고는 손톱만믐도 없었다.

     불타는 야심은 고사하고 그럴싸한 미래를 계획해 보겠다는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플로리다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길 때가 오고 말리라는 것을 알고 있

     었지만, 그런 기분이 무르익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느면 안 될 때까지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고

     앞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학을 그만둔 제 힘으로 독립한 이후로 7년 반 동안 그가 뭔가

     이룬 것이 있다면 현재를 사는 것. 지금 여기 말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와 같은 능력이었다. 남

     들 눈에 칭찬할 만한 성취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나름 상당한 수련과 절제를 통해서 얻은

     능력이었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다시 말해서 그 어떤 열망이나 희망도 갖지 않고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고, 하루하루 세상이 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인간이 할 수 잇는 한 최소한 것만을

     원하는 듯이 사는 것 그는 자신의 욕망을 조금씩 줄여 나가서 이제는 아주 최소 한도에 가까워

     졌다. 담배를 끊고 술을 끊었고 식당에도 가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컴퓨터도 없었다.

     차도 자전거로 바꾸고 싶었지만 일하러 가는 거리가 꽤 멀어서 차는 없앨 수가 없었다. 호주머

     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쓰레기 통에 쳐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역시 일하려면 필요했으므로 처분할 수가 없었다. 디지털 카메라는 과분한 사치일지 몰랐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따분하고 힘겨운 폐가 처리 작업에서 그나마 구원같은 존재였다. 그는 빈민가

     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집세도 쌌고, 최저 생계비만으로 살았다. 그가 자신에게 허락하

     는 유일한 사치는 책. 페이퍼백 책, 주로 소설을 사는 것이었다.

 

 

   마일스는 플로리다에서 폐가처리 일을 하며,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왜 버려진 물건들을 찍었을까? 파산, 체납, 빚 때문에 집을 떠나야만 한 사람들은 물건을 버리고 간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두고 간게 아닐까?  마일스가 사람들이 놓고간 물건들을 찍는 것은 과거는, 실패는 잊고 싶다고 잊혀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마일스가 언젠가는 모리스와 윌라에게 보비의 사고에 대해 고백해야 하듯, 그 집을 어쩔 수없이 떠나야 했던 사람들도 과거의 고통의 순간들과 마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상처가 아물든, 다시 덧나든 할테니까.

 

   스스로 만든 감옥에 살던 마일스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필라. 필라와 마일스의 만남은 운명적. 생활, 감정 모두를 절제하고 살던, 비장함까지 느껴졌던 마일스를 순간 허물어 뜨린 필라. 마일스는 필라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모님을 만나 돌아온 아들을 받아달라고 말한다.

 

   선셋파크에서 경찰에게 끌려나가면서 마일스는 경찰의 턱을 날리고 도망간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돌아오면서 마일스는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순간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부모님의 낙담을 듣고는 도망치듯 떠났지만 이제는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고 정면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다시 부모님과 필라를 떠난다면 희망은 정말 없는 것이니까 다른 방법도 없다. 희망이 있는데, 기회가 있는데 도망가는 것은 어리석잖아. 빙이 선셋파크에서 끝까지 버티겠다고 한 것처럼 버텨야 하는 것 아닌가?

 

 

   책을 다 읽고 나서, 무모한 낙관주의자가 된 것 같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잘 되겠지, 잘 될거야 하는 막연한 희망이 느껴진다. 막연한 희망을 구체화 시키려면 마일스의 자제력보다는 빙과 같은 신념과 실천력이 필요하다.

 

   빙은 인간이 주변 세상을 바꾸었다 해도 인간 자신은 바뀌지 않았고, 삶에 관련된 사실들은 그대로라고 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는 것,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모든 감정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대로라고 한다. 또 수십년간의 기술의 발전은 삶의 가능성을 축소시켜왔을 뿐이며, 풍경은 더 초라해지고 인간으로부터 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현대의 삶에 씌워진 가면을 전투적으로 벗겨내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매일 불만을 가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고수하려 무진 애를 쓰며, 있는 그대로의 모든 현 상태에 반대편에 서서 저항한다. 그리고 신기술을 거부하며 휴대전화, 컴퓨터를 피하고, 주말마다 재즈 연주를 하고 망가진 것들의 병원을 운영하며 수동 타자기와 같은 옛날 물건들을 수리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또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불법인줄 알면서도 선셋파크의 버려진 집에 들어가서 산다. 시청에서 집을 비우라는 서류가 날라와도 버티고, 경찰이 끌어내는 대도 끝까지 발버둥친다. 빙의 자기 신념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실천력이 부러울 뿐이다. 그리고 폴오스터 작가도 마일스 보다는 이런 빙에게 더 애정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빙과 마일스 외에 선셋파크에 모인 엘렌과 앨리스도 연애, 직업, 정체성 등에서 고통을 겪지만 나름대로 해결해 나아간다. 해결방법은 ‘성장’이다. 자신을 좀더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간다. 선셋파크에서 성장의 기회를 만든 4인방들은 이제 뿔뿔히 흩어진다. 이들은 나중에 선셋파크에서 지낸 시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그 시기가 부끄럽지 않도록, 노을처럼 아름다운 시기가 되도록 열심히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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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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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예찬이라는 제목으로 쓰셨던, 그러나 책인시공에는 실리지 못한 원고들도 읽고 싶습니다. 두번째 책이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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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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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오스터? 지루해서 못 읽을거라는 친구의 말을 들었으면 후회할 뻔 했다. 스토리 전개가 군더더기 없이 빨라서 한숨에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작가가 등장인물들에게 애정이 많고, 많이 아낀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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