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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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범신을 좋아한다.

은교에서 어린 은교를 사랑한 노인도, 소금에서 일언반구 없이 가족을 떠난 아버지도 좋아했다.
하지만 주름의 주인공들은 읽는 동안 구역질이 날정도로 혐오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주름의 천예린이 겉멋 만 든 마녀라고, 김진영은 허깨비를 쫓아 떠난 가장이라고 생각한다.(주인공이 싫다 해서 `주름` 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박범신의 소설에는 `욕망, 소유욕` 과 함께 자본주의에 대한 비난과 자유에대한 갈망이 녹혀있다. 소금이 그렇다. 그의 소설을 빛나게 해주는 멋진 주제들이다. 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가떠난다는데서 두책의 유사함을 느꼈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천예린을 쫓으며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김진영은 자신을 옭아 매던 `아버지` `남편` `이사` 등의 허물을 벗고 오롯이 `김진영` 이라는 사람으로만 남는다. 하지만 그의 이름 석자 또한 무엇으로 정의 되는 것인가? 의문이아닐 수 없다. 그들은 성적으로도 기이한, 상식에 속박되지 않는 행위들을 한다. 이를 자유 라는 이름으로 표방하며 즐긴다. 소설 속 김진영은 자신의 쳇바퀴 처럼 굴러온 수십여년의 일상에서 권태로움과 혐오를 느껴왔다. 하지만 이 `자유` 라는 이름의 삶 또한 어느덧 익숙해지고 권태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자유의 땅 레드하우스에서 천예린이 불현듯 떠난것이 아닐까

자유란 무엇일까. 천예린과 김진명 두사람은 자유를 얻은 사람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임종을 앞둔 천예린은 죽기직전 충만의 대명사처럼 느끼던 `자유` 역시 텅비었음을 고한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우리를 규정하고 속박하는 삶 속에서 샹그릴라와 같은 `자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 책은 박범신의 기존의 소설과는 다르게 사뭇 거친 느낌이었다. 그의 문체는 여전히 정갈하고 아름답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 책을 `단순한 부도덕한 러브스토리`로 읽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십년 이상 도덕교육을 받은 나로써는 색안경을 끼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김진영과같은 상황에서 그처럼 행동하지 못한다.
하지만 독특한 스토리 라인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여실히 보여준 이책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감히 사랑한다고 말할수도 없다) 천예린의 시한부 인생에서 삶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혹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는가. 생이, 환하던가.

두번읽기엔 나의 에너지가 너무 닳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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