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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 2010 새로고침판 ㅣ 자꾸자꾸 빛나는 1
이상석 지음, 박재동 그림 / 양철북 / 2010년 11월
평점 :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폭행하는 뉴스가 빈번하게 나오고, 유치원 시절부터 대입을 위한 경쟁구도가 펼쳐지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과연 끈끈한 사제간의 정이 생길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삭막해져 가고있는 학교 생활은 더이상 인성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오로지 대학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으로 비춰진다. 정부는 해마다 사교육 열풍을 잠재울 정책을 편다고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책들이 결국 사교육 시장을 커지게 만든다. 더구나 정부의 말을 믿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까지 왕왕 생기자 이젠 학원의 말에 더 신뢰를 두는 상황까지 되어버렸다. 아이들 또한 학교 선생님보단 학원 선생님에게 더 많이 배운다고 여길정도인데, 이걸 아이들의 탓으로만 돌릴수 없다. 무한경쟁체제를 만들어버린건 바로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겐 이런 교육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 혀를 끌끌 차지만, 막상 나도 부모가 되면 "남들 다 하는데, 우리애가 뒤처지면 어쩌지" 라는 말을 하며 똑같이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땐 저녁 10시까지 하는 야간자율수업과 0교시 수업, 각종 시험에 많이 힘들었는데, 요즘 학생들을 보면 그래도 나 때는 살만한 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요즘 학생들의 일과는 끔찍하고 안쓰럽고 불쌍할 정도다. 더구나 그렇게 힘들게 대학가라고 밀어붙였는데 결국 88만 세대만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이런 메마른 교육풍토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건 이상석 선생님과 같은 교사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바르게 커 나갈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아직 교육은 끝났다 라고 말할수 없는 것이다. 탈선하는 아이들을 비딱하게 바라보거나 비난하지 않고 우선 아이가 그럴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생각하는 선생님이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반성하고 선생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친근하게 여기는 것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어른이 없어 도움을 청할수 없을 때 선생님마저 눈과 귀를 닫는다면 아이는 비뚤어질수 밖에 없다. 그럴때 선생님의 올바른 지도가 아이의 인성과 미래를 바른 길로 인도할수 있다.
1988년에 출간된 이 책은 교사의 본분이 무엇인지, 학교교육이 나아갈 바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시대가 많이 흘렀지만 이상석 선생님이 경험한 이야기와 아이들의 삶은 이천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해당되고 공감되는 것들이다. 경제상황이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밥을 굶거나 형편이 안돼 대학의 꿈을 버리고, 혹은 가출과 나쁜 짓들을 하며 엇나가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이 이 모든 아이들을 다 보살필수는 없지만,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분명 그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가출을 한 학생들이 자신에게 연락을 해오자 대견스럽고 기쁜 마음에 혼내지 않았지만, 그 후로 변한 모습이 없이 나쁜 짓을 많이 하자 결국 학급재판까지 해 자신들의 죄를 알게 한 처사는 극단적인 처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 도둑질을 한 학생을 위해(안타까운 사정이 있었다) 검사에게 탄원서까지 들고가는 열의와 사건의 진실을 알기위한 과정은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교사가 그렇게까진 못할 것이다.
그런 이상석 선생님에게도 교사로서 부끄럽고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었다. 왠지 밉보이거나 싫은 아이들의 잘못에 분풀이성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흔히 말하는 '사랑의 매'는 없다는게 그의 생각이고 체벌 사건으로 인해 깨달은 것인데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아이들을 때릴 때는 결코 사랑해서 때리는게 아니다. 힘 없고 자기 방어를 할수 없는 아이들에게 퍼붓는 무차별적인 폭력일 뿐이고, 씻을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죄 이다. 가깝게 지내는 제자가 여전히 선생님께 맞은 기억을 잊지 못한다는 말에 이상석 선생님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어쩔줄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가정방문을 했을 때 학부형들이 찔러주는 촌지를 받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약간의 먹을것을 사주고 대부분을 술잔 기울이는데 썼다고도 한다. 교사 초년 시절에 겪은 이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고 아이들 앞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고 하는데, 이 점이 그를 다른 교사와 다른 것 같다. 교사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부끄러운 행동을 말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 일로 아이들의 신뢰를 얻고 그 자신도 깨달음을 얻었으니 부끄럽지만 값진 교훈을 준 셈이다.
그를 국어 선생님으로 만든 옛 스승에 대한 이야기와, 잊지 못할 제자들의 편지와 에피소드는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고 참 부럽기도 했다. 특히 윤덕만 선생님은 교사의 참된 본분에 대해서 일깨워주는데, 이런 선생님과 함께했던 제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싶다. 전교조로 활동하게 부당하게 해직을 당해 아이들을 더이상 볼수 없었을때의 가슴 아픈 경험은 눈시울이 시큰해지게 만든다. 아들로,남편으로,또 아버지로 살아온 그 이지만 선생님이라는 자리가 그에겐 무척이나 컸고 그만큼 그리움도 짙을수밖에 없었다. 그 무엇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그리움과 공허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조차 할수 없다.
이상석 선생님을 보면서 진정한 교사의 역할에 대해 배우게 된다. 책임감과 사명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교사의 마음으로 교단에 서는 그를 보면서 이 시대에 많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학교는 명문대생을 몇명 배출하느냐에 따라 유명 학교가 되고 학부모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교사는 아이들과 친근하고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 싶지만, 대학에 떨어져 불행해하는 제자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학 입시에만 몰두할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어떤 교사가 살아있는 교육을 마다할까. 하지만 교육현실은 대학에 많이 보내는 교사를 원하고 있다. 교육의 1순위가 무엇인지 자꾸만 잊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막막하기만 하다. 부디, 이상석 선생님과 같이 소신있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교육을 해주는 분이 많이 나오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