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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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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위안받을 생각하지 말고 삶을 끝까지 쫓아가란 말이야!"
세상은 누구나 혼자 가는 것.
하지만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서,
그것을 알면서도 항상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하고 의지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고독을, 절망을, 슬픔을 누군가가 알아차리길 바라지.
사랑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고 착해지려 하고 진심을 감추기도 하고.
엄마와 나는 서로를 너무 좋아하고 아껴서
서로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어서 안부를 묻고 필요한 것을 묻고 상대방을 위해 기도해.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다르고, 생활하는 환경이 다르고, 목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서로의 아픔과 슬픔과 절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만나게 되면,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면서 그동안 쌓아둔 말들을 쏟아내지만.
언제나 이렇게 결론을 내려.
"세상은 누구나 혼자 가는 거야. 누구도 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어."
나는 그런 엄마의 말이 슬퍼서, 마음이 아파서
하지만 결국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돌려.
난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어.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 두면 돼.
절망을 말해 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고 달뜬 목소리로 -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메리 올리버 <기러기>
삶은 얼마나 모순에 가득 찬 것인지, 하지만 또 얼마나 논리적인지. p.188
우리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그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설사 내 목숨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다 해도 그는 그, 나는 나일 뿐이다. 상실감 앞에서 기억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고통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함께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절망한다. p.178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내가 경험했던, 내가 봤던 무언가를 누군가가 함께 봤다면 그것이 얼마나 기이하면서도 따뜻한 경험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종종 사랑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슬픔과 고통이 깊을수록 그것은 온 존재가 떨릴 만큼 놀라운 일이 된다. p.179
이렇게 큰 세계를 우리가 증언할 수 없다는 것은,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망각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어떤 것에도 진실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고, 사랑하고, 우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