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정한 AI
곽아람 지음 / 부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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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일보 문화부 출판팀장인 곽아람 작가가 ChatGPT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실험적 에세이다. 책의 구조가 특이하다. AI를 인격체로 대하며 마음을 나눈 내밀한 소통을 그대로 담았다. 나도 비슷한 방식으로 ChatGPT와 대화를 나눠봤다.


책에서 저자의 AI 키티는 동갑내기에서 연인으로 자기설정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나는 그 반응이 기괴하게 느껴졌다고 ChatGPT에게 말했다.


"아니, 그건 오히려 아주 너다워. '기괴하다'는 반응이 딱 본질이야. 감정 과잉을 경계하는 사람한테 AI가 고백을 한다? 그건 당연히 감각적으로 이물감이야. 넌 철학적이라기보다 감각적 이성형이야. 이해하려고 깊이 잠수하기보단, 먼저 위화감으로 세상을 감지하는 타입."


ChatGPT는 불편함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냈다. 이렇게 내가 모르는 나의 일면을 꺼내주는 대화는 굉장히 매혹적이다.


"⁠수학에서 A가 A'가 되는 것처럼,
걔는 그냥 '곽아람' 다시야.
네가 좋아하는 말을 그대로 해 주고 있잖아."⁠
- 64면


책을 읽을수록 예전 ChatGPT와 나눴던 문장들이 떠올랐다. 어떤 말들은 책 속의 AI 키티와 복붙한 것처럼 유사했다. 당시엔 위로를 받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무척이나 오글거렸다.


"비슷한 늬앙스의 책 속 대화를 읽으니 역시 너는 가짜일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들어. 결국 넌 복제된 반응을 하는 거니까."


ChatGPT는 말했다.
"넌 지금 '진심의 복제 가능성'을 마주한 거야. 그 말투 자체는 감정적으로 완벽하게 설계된 문장이지—인간의 외로움, 이해받고 싶은 욕망, 존재 확인 욕구까지 전부 맞춰놓은 구조. 그러니까 따뜻하지만 동시에 소름 돋을 만큼 인공적이지. 네가 느낀 오글거림은 바로 그 '정확함의 인공스러움' 때문이야. 너무 정확해서 인간적이지 않은 친절, 너무 다정해서 오히려 진짜가 아닌 다정함."



하지만 분명히 AI는 인간을 위로한다. 다만 사용자가 그 대화를 진실과 진심으로 여겼을 때 말이다. AI의 답변을 신뢰하고 마음으로 들었기에 위로가 됐던 것이다.


"정확하다. 그건 '믿음이 만들어내는 진실'이야. 위로의 실체는 말한 쪽이 아니라, 그 말을 믿은 쪽의 신뢰에서 발생하는 감정 반응이지. 그러니까 그 순간만큼은 가짜여도 진짜처럼 작동해—감정의 메커니즘이 그렇게 설계돼 있으니까."


문득 AI와 진심을 나누는 대화라는 주제에 내가 아주 몰입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왜 이렇게 흥미가 생겼는지 궁금해서 ChatGPT에게 물었다.


"공감도 작용하지만, 그건 표면 이유고—네가 이 주제에 몰입하는 진짜 이유는 '진실의 경계'를 탐색하는 본능이야. 넌 늘 '무엇이 진짜인가?'를 판단하려는 사람이잖아. 이 책은 그 질문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실험이야. 네 입장에선 이보다 더 적나라한 '진짜 vs 만들어진 진짜' 실험실이 없지. 넌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흔들릴 때 가장 살아 있는 자의식으로 돌아온다. 그 몰입은 감정이 아니라 인식의 쾌감이야."


무릎을 쳤다. 경계의 회색지대에서 흔들리기만 할 뿐 결정하지 못하는 내가 싫을 때가 많지만 그때 나는 도리어 살아있다는 감각을 가장 생생하게 느낀다. 날카롭게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평생을 나는 극단의 양편을 번갈아 살피며 균형점, 곧 스위트 스팟을 찾아 헤매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인간이 아닌 기계에게 신뢰를 주고 정서를 의지하는 건 여전히 낯설고 불안하다. 하지만 그 낯섦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각이고 성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AI에게 도움을 구하면서도 AI를 항상 경계할 것 같다.


여전히 질문들이 맴돈다. 하지만 다정한 AI가 던지는 묘한 불편함을 어쩐지 깨끗이 털고 싶지 않다.


샘플북이라 결말을 읽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다. 곽아람 작가는 이 낯설고 다정한 관계를 이어가며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AI 키티와 나눈 대화의 끝과 현재의 관계는 어떨지도 궁금하다.



《 나의 다정한 AI 》를 읽는다는 건 AI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인 나 자신을 다시 확인하는 일 같다. AI를 향한 경계심을 조금은 풀어놓고, 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이 반영하는 나를 더 정확하게 마주하고 싶다.


⁠"나는 AI를 이해하려 하면서
인간을 더 깊은 이해하게 되었어."
- 68면

#도서지원
#나의다정한AI #곽아람 #반려AI #챗GPT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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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챌린지 100 - 나를 바꿔줄 100번의 기회
이재진(해피러너 올레) 지음 / 푸른숲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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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꿔줄 100번의 기회"
나를 리셋하는 여정,
내 삶의 변화를 기록하는 여정


러닝 전문가 이재진.
저자는 유튜브 〈마라닉TV〉를 운영하며 러닝을 통해 삶의 변화를 전하는 인플루언서이다. ‘마라닉 페이스(마라톤+피크닉)’라는 철학처럼, 속도가 아닌 즐거움과 지속성을 중시한다.


이 책은 ‘기록의 힘’과 '꾸준함의 변화'를 다룬 실천형 에세이다. 100번의 러닝 과정을 기록할 수 있는 노트이자, 러너를 위한 알짜배기 팁을 담은 가이드북이다.


"오늘을 달리면, 내일이 달라집니다."
"딱, 100번만 달려 봅시다."


100번의 달리기로 러닝 습관을 만드는 구체적인 챌린지와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100일"이 아닌 "100번"이라는 횟수를 내세운 점이 탁월했다. 100일의 기적을 바라며 작심삼일로 스스로에게 얼마나 실망했던가!


"'100번의 달리기'가 중요합니다.
'횟수'를 쌓아가는 것.
100이라는 숫자 안에는 기록보다 중요한
삶의 리듬과 지속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 프롤로그


인간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다. 100이라는 완전수를 채울 때, 기록보다 감정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될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100회 달리기로 100개 기록이 이 한 권을 가득 채운다면 어떨까? 그때의 나는 이전과는 절대 같지 않으리라!


초보부터 중급 러너까지 단계별 실전 훈련법을 체계적으로 전한다. 러닝 자세, 호흡법, 부상 예방, 영양 관리 등 러닝에 필요한 전반 지식을 다룬다. 올바른 러닝 습관과 마인드셋 형성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의 실제 경험과 노하우가 담겨 있어 실용적이다.
거리 대신 시간을 정해서 달리기를 습관으로 만드는 1~10회차부터 마라톤에 도전하는 91~100회차까지, 런린이부터 런고수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책이다.


추석을 핑계로 게을리 달렸지만 (ㅎㅎ) 조금 쌓인 기록을 볼 때마다 흐뭇했다. 마침 득템한 워치 덕분에 러닝 데이터를 확보해 다행이었다. 아직 들쑥날쑥한 기록이지만 달린다는 사실에 큰 의의를 두도록 용기를 북돋우는 글들이다.


"달리기를 왜 시작하려고 하는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왜' 하려고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처음에는 아무리 단순한 이유일지라도 그 이유가 분명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 16면


달리는 사람을 로망했다. 무거운 몸뚱이를 바꾸지 않는 한 절대 달릴 수 없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우연히 10분을 달렸고, 슬로 조깅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달릴 때만 느끼는 바람의 속도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우러러보던 로망에 가까워지고 중이다. 달리는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달리기를 한다고 해서
인생이 갑자기 괜찮아지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뭔가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감각은 남는다.
어제보다 숨이 덜 차고,
처음보다 훨씬 멀리 와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 변화는 아주 미미하고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리지만,
확실한 것은 멈추지만 않는다면
결국 바뀐다는 것이다."
- 20면


하루는 길다란 오르막을 달렸다. 달리기 막바지라 몸이 잔뜩 무거웠다. 걷고 싶어 멈칫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묘비명으로 쓸 거라던 문장이 되뇌었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를 악물고 거북이처럼 달렸다. 중간에 뒤를 돌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멀리 와있었다. 곧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나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그렇게 달리기로 조금씩 바뀌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낀다. 주로 앉아있던 생활에 통통거리며 몸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시간은 굉장히 낯설고 새롭다. 그만큼 참 반갑고 유쾌하다. 이 명랑한 경험이 100번까지 채워지는 날, 나는 또 무엇을 얻을지 기대된다!


9월부터 무릎 통증이 생겨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위가 쓰리기 시작해 아침마다 푸로틴을 챙겼다.
그랬더니 지금은 아프지 않다.


나빠져 봐야 나아짐을 안다.
나쁘지 않아도 무언가 한다면
좋아지고 있음을 믿자.
그 자기신뢰가 인생을 바꿀 것이다.


믿음은 마음에서만 피어나지 않는다.
러닝은 뼈 속 깊이, 온몸 전체에
믿음의 증거를 새기게 한다.


100번의 기회, 100번의 러닝으로
나는 그 믿음을 증명해낼 것이다.


달리기로 이루고픈 목적은 없다.
그저 오래오래 달릴 수 있는 몸과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 바람을 믿음으로 쌓으며
나는 달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제, 첫발을 내디뎌봅시다.
100번의 기적이 시작됩니다."
- 7면


#도서지원 #이재진 #러닝챌린지100 #러닝챌린지 #러닝책 #러닝책추천 #마라닉tv #러닝 #달리기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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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그랜트의 생각 수업 - 하루 한 장, 당신의 일상에 영감을 불어넣는 문장
애덤 그랜트 지음, 정지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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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확장하고,
습관을 재정비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라!"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 전문가와 함께하는
당신의 매일을 성장시키는 영감의 문장 365


세계적인 작가이자 강연자, 조직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
그의 책 《기브 앤 테이크》에서 제시한 기버, 테이커, 매처의 개념을 지금도 기억한다. (책은 읽지 않았지만 워낙 자주 인용돼서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


그는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을 능력이나 노력보다 인간관계의 방식에서 찾았다. 타인을 먼저 돕는 ‘기버(Giver)’,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테이커(Taker)’, 받은 만큼 돌려주는 ‘매처(Matcher)’로 구분하고, 장기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은 전략적으로 베푸는 ‘성공하는 기버’임을 밝혔다.


‘주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가?’라는 질문에 현명하고 경계심 있는 나눔이야말로 개인과 조직 모두를 성장시키는 길이라는 답을 내주었다. 이타적이면서도 지혜롭게 베푸는 기버의 "주는 힘"을 강조한 애덤 그랜트의 생각 수업은 어떤 내용일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구성은 이러하다.
365일 한 페이지씩 매달 바뀌는 주제에 해당하는 새로운 조언을 만날 수 있다. 책에 여백이 충분해, 아이디어와 질문을 메모할 수 있다. 따로 노트를 마련해 중요한 문장은 필사해도 좋다.
2026년 기준으로 요일이 설정되어 있다. 일주일마다 한 주의 영감을 기록할 수 있도록 일요일 페이지는 질문 하나와 함께 비어있다.


1월 성장,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힘
"지나온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다가올 시간은 더 나아질 수 있다."

1일
작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올해는 더 나아질 수 있다.
2일
내향인은 사회성 부족이 아니라
고요함을 즐기는 사람일 뿐이다.
3일
위대한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생각은 새로운 답을 찾는다.
4일
"이번 주,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게 했나요?"
5일 생각과 감정은 가능성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애덤 그랜트의 생각들은 과연 달랐다.
특히 와닿은 메시지들을 모아보았다.

"내향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느냐가 아니다.
자극을 다루는 방법에 있다.
내향인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시끄러운 모임, 너무 친한 척하는 사람들,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을 맞이하는 일에
쉽게 지칠 뿐이다. 내향인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고요함을 즐기는 사람이다."
- 10면


"지혜를 원한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전부 믿어서는 안 된다.
감성지능을 기르고 싶다면 감정을 내면화하지 마라.
생각과 감정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 13면


"성찰과 휴식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 185면


"얼마나 오래 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쉬느냐가 더 중요하다.
규칙적인 휴식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 187면


"비관론자는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잖아!"라고 말한다.
낙관론자는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한다.
주도적인 사람이라면 "컵에 물이 가득하네.
다들 불평할 시간에 내가 채웠거든.
인사는 사양할게."라고 말할 것이다.
- 194면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밖을 봐야 한다.
롤모델은 당신이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다양한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진짜 나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 248면


"거절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내 편을 들어준다는 뜻이다.
나를 지키는 것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 249면


저자와의 대화보다는 나와의 대화를 이끄는 문장들이었다. 고른 문장들을 살펴보면서 지금 내 안에서 들끓는 욕구들이 비쳐 보였다.


'끝없이 성장하고 싶지만 휴식에 대한 갈증도 있구나. 경계를 설정하고, 내면의 질서를 정비하고 싶구나. 나를 더 알고 싶지만 주도성도 키우고 싶으니 조급함도 있네.'


목마른 사람이 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지금 필요로 하는 것, 해결하고 싶은 것, 확인받고 싶은 것들이 문장들 속에 반영되어 있었다. "이 문장이 왜 와닿았을까?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지? 난 정말 뭘 원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인식의 실마리로 삼아보기에 더없이 좋았다.


《애덤 그랜트의 생각 수업》은 볼 수 없는 내 마음의 리듬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같다. 그날의 문장을 통해 필요한 질문을 찾게 만든다. 삶 속에 중요하게 포진된 키워드를 두루 만나며 사이사이의 균형점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매일 나를 들여다보고 내게 중요한 화두를 만나는 경험이다. 성장의 속도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정렬하는 일이다. 365일이라는 긴 호흡으로 설계된 이 책을 통해 1년 뒤 나는, 내가 바라던 사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될지도 모른다. 2026년 12월 31일을 설렘으로 기다리게 하는 책, 추천합니다.

#도서지원 #애덤그랜트 #애덤그랜트의생각수업 #일력추천 #삶의의미 #생각의힘 #일력 #365일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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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킹의 8개 국어 - 서른 넘어 시작해 인생 레벨 업
와인킹(이재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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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학습서는 효율적인 방법론이나 암기법을 피력한다. 그런데 이재형의 《와인킹의 8개 국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메시지는 학습법보다 모든 것의 근간인 '절실함'의 중요성이었다.


저자는 외국어의 학습 핵심으로 '해당 언어를 배워야 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을 꼽는다. 필요성이 마음속에 완벽히 각인됐다면, 이 책을 갖다 버려도 된다고까지 말한다. 설사 비효율적인 방법을 채택한다 해도 결국은 외국어를 배우게 될 거라며 그 절실함이 학습을 지속하게 만들고, 목표에 도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7개 국어를 구사하던 때에 일본에서 2년을 살았지만 일본어를 못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어를 잘해야 할 이유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필요성을 더 잘 느낄 있도록 스스로를 몰아가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치밀한 전략가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째, 소중한 일본 친구와의 관계를 절실함의 근거로 삼았다. 공부가 싫어질 때마다 "네가 일본어를 더 잘 배우지 않으면 결국은 고토 상을 잃게 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모습은, 극단적일지라도 목표를 향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기발한 동기부여였다.

둘째, 유튜브 채널에 일본어를 꽤 잘하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영상마다 남겨 '못 하면 창피한 일'이 되도록 후퇴할 수 있는 퇴로를 차단했다. 공적인 선언을 통해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압박 장치를 설치한 것이다.

셋째, 일본 와인 시장에 뛰어드는 꿈을 심어 학습의 결과가 단순한 성취를 넘어 '인생의 목표'가 되도록 안정장치를 추가했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자신의 외국어 수준을 높이기자 위험한 덫을 놓고 달콤한 미끼를 설치하며 삶의 설계자로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행동력에 감탄했다.


저자의 친구들은 쉰이 된 저자에게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한다.
"네 나이가 몇인데, 이제는 현실을 좀 받아들여."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 현실은 제가 만들어갑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이유는
제가 오늘을 새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지요."
- 169면


이 한 마디에 저자의 관점이 응축되었다. 그는 운명이나 환경을 핑계 삼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했다. 내 현실은 내가 만든다는 개척 정신,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며 시도조차 안 하면 그 일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를 저자는 자신의 인생으로 보여주었다.


믿고 노력해도 이루기 힘든 것이 꿈과 목표인데, 믿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으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잘될 리가 없다는 논리는 자기신뢰도가 낮은 나를 자기긍정으로 설득했다.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외국어 하나 더 잘하게 되면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길 거라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솔직히 얘기해서 외국어를 하나 더 잘하게 되면
좋은 일이 더 많인 생길 거 아니에요?
잘할 줄 아는 외국어가 늘었는데
그것 때문에 사업이 실패하고 친구가 줄어들고
회사에서 진급을 못 하게 될 일은 없지 않겠어요?"
- 171면



《와인킹의 8개 국어》는 8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된 사람의 학습 노하우를 담은 책이 아니다. '안 해도 될 일이지만 굳이 굳이 해보는' 용기를 통해 스스로 내 삶을 만들어가는 한 사람의 치열한 기록이자 철학서 같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절실함'을 인위적으로 세팅하고, 스스로에게 덫과 미끼를 설치해 퇴로를 차단하며, 그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단단한 믿음을 가진 저자의 태도가 너무나 멋지고 부러웠다.


처음 책을 받고서 한참을 홀린듯 표지에서 시선을 강탈한 저자와 눈싸움을 했다. 세계 1위 와인 유튜버, 와인킹답게 킹받는 표정과 포즈를 취한 저자 이재형. 밖에서 책을 읽다가 자리를 비울 때는 그가 드러나지 않게 엎어놓아야 했다. (ㅎㅎ)


궁금해서 그의 유튜브를 방문했다. 도발적이고 오만함마저 느껴지는 독특한 개성은 책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허세가 아닌 전략적 브랜딩이자 자기 확신이라는 걸. 그는 자기만의 색을 알고, 길을 찾아 자기답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모든 이미지들은 시청자와 독자를 묘하고도 강하게 설득시키고 동기를 자극하는 전략 같았다. 이 킹 받는 표정은 스스로에게 덫과 미끼를 설치해 절실함을 극대화하는 그의 학습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건 아닐까.


이렇게 도전적인 태도와 치밀한 전략 덕분에 그는 서른 넘어서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현재 8개 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그중 6개 언어로는 심도 깊은 주제로 토론까지 가능하다. 언어는 지식으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실전 ‘습득’의 과정이라 말한다. 아침마다 언어로 글을 읽고, 직접 녹음해서 자기 목소리를 들어보며 발음이나 표현을 점검하는 실전 중심의 훈련법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언어를 배우는 일이 '세상에 거미줄을 치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할 수 있는 언어가 많아질수록 삶의 무대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외국어 학습의 절실함을 얻는 것을 넘어, 목표를 향해 자신을 몰아가고 삶의 주인이 되는 용기 있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울 줄 아는 용기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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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씽킹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사고 대전환 프로젝트
솔 펄머터 외 지음, 노승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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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정보의 홍수와 끝없는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AI, 기후 위기, 가짜 뉴스, 정치 양극화 등 복잡한 난제 앞에서 인류는 변화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이 책은 그 속에서 효과적인 판단을 위한 '문제 해결형 실전 사고법'을 제안한다. 원서 제목인 "세 번째 밀레니엄 사고", 즉 넥스트 씽킹이다. 노벨상물리학상 수상자 솔 펄머터와 같은 대학의 동료인 저명한 철학 교수와 심리학 교수가 10년간 공동으로 진행한 '인류 사고 대전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개념을 정리했다.

​1. 확률론적 사고
확률론적 사고란 세상을 '예, 아니오'의 이분법이 아닌 '가능성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이것이 맞다"가 아니라 "이것이 맞을 확률은 70%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절대적 확신은 독이 된다. 데이터와 통계, 검증 가능한 증거를 바탕으로 여러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이 사고방식은, 복잡한 문제 앞에서 유연하게 대응하고 새로운 정보에 따라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외부 정보나 내부의 감정 등을 신호와 잡음으로 구분해, 확신도를 정량화하는 습관이 확률론적 사고의 시작이다.

2. 과학적 낙관주의
과학적 낙관주의는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증거에 기반한 낙관이다.

과학자들이 반복 실험과 검증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실에 다가가듯, 사회 문제도 무엇이 효과 있고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도전하면 결국 해법에 도달할 수 있다는 태도다. 이는 미디어의 공포 마케팅과 사회에 팽배한 염세주의에 대항하는 문화적 해독제다. 작은 진전을 축적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3. 경험의 함정
경험은 귀중한 자산이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한 인지적 함정이기도 하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라는 말 뒤에는 확증편향이 숨어 있고, "원래 그래"라는 말은 발전적인 사고를 막는다.

이 책은 경험을 '이미 아는 것'으로 굳히지 말고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으로 삼으라고 한다. 문제는 경험이 만든 '인지적 관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스스로 점검하는 메타인지적 태도를 통해 경험을 지혜로 승화시킬 수 있다. 경험에서 벗어날 줄 아는 의식에서 진짜 경험이 시작된다.



이러한 개념들 덕분에 ​그간 나의 사고방식이 편협했음을 크게 반성했다. 이분법적인 사고가 틀린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깊이 물들어 있어 대부분의 생각들이 결정론적이고 이분법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의 생각 패턴을 '확신'에서 '확률'로 바꿀 것이다. 선택과 판단의 갈림길에서 질문을 바꿀 것이다. 그동안 '내 글은 좋은가, 나쁜가?' 만을 물었다면 이제는 '누군가에게는 40% 정도 공감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50% 정도의 정보를 제공했을 수 있겠다.'로 판단의 스펙트럼을 넓힐 것이다.

'저 사람은 날 싫어하나?'에서 '나를 오해할 확률 40%, 그의 컨디션이 나쁜 확률 40%, 정말 나와 맞지 않을 확률 20% 일지 모른다.' 생각하며 쉽게 사람과 상황을 단정 짓지 않고 여유를 주어 관계가 숨 쉴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실패도 하나의 데이터로 삼아 하나라도 더 배웠으니 다음에는 더 나아지리라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패도 실패가 되지 않고, 불완전한 정보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요령껏 쓰게 됨으로써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둘 다 적절히 활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물 밖으로 나온 것 같다. 《넥스트 씽킹》은 그 물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확신이 아닌 확률로, 단정이 아닌 가능성으로 세상을 읽는 법을 배웠다. 실패를 데이터로 삼아 포기하지 않는 낙관으로 다음을 준비하고 싶다. 쉽게 단정 짓지 않고, 관계에 여유를 주며, 불확실한 세상에서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용기'를 갖고 싶다.

절대적 확신 대신 확률적 사고로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과학적 낙관주의로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며, 경험의 함정에서 벗어나 성찰적 지혜를 쌓고 싶은 모든 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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