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출간한 지 150년이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 작품이다.

포경 어업이 금지되긴 했지만, 시대를 느끼기 어려웠다. 바다라는 외롭고 거친 배경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자연의 사투가 동떨어진 듯 상징적인 공간을 만들면서 모든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나 보다.  

고전은 때로 읽지 않아도 읽은 듯한 느낌을 주고,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모비딕이란 제목만으로 어쩐지 친근하고, 인간과 고래가 우정을 나누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곤 했다. 하지만 웬걸.

이 걸작은 인간의 집념, 맹목적인 도전, 도전과 생존 사이의 비극을 향해 간다. 작가가 포경선에서 일한 경험이 사실적이면서 새롭고 유효기간이 긴 작품을 만들어 냈다.

모비딕은 소설이면서 고래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고래를 집요하게 연구하고 관찰하고 경험한 작가의 시선이 빛난다.

제목이 모비딕이지만 이 두꺼운 책에서 모비딕은 후반부에나 등장할 뿐이다.

에이브러햄 선장과 선원들은 모비딕을 찾아가는데, 그 정체를 마주하지 못한 흰고래는 두려움이며 설렘이며 궁극의 목표이다.

살아가면서 쟁취해야만 하는 어떤 목표, 포기할 수 없는 목표.

때로는 포기하는 것이 용기라고 한다.

어떤 이는 포기하지 못하는 미련함에 대해 숙연히 충고하기도 한다.

에이브러햄과 그의 선원들이 스타벅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 모비딕 사냥을 포기하고 생존했더라면 과연 행복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결말, 만족스러운 결말을 상정하지 않고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그들이 비극을 예기치 못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는 것, 죽음을 만나게 될지언정 가고야 마는 것.

그것으로 만족스럽다. 그것으로 위대한 성취다.

거대한 적에게, 광포한 세상에 쉽사리 타협을 권할 수가 없다. 

이스마엘이라 불러달라고 한 화자.

그의 시점에서 쓴 이 소설은 고래 지식백과이면서, 놓지 못한 집념에 대한 통찰이다.

생존만이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고래를 포획하는 장면은 잔인하게 읽히고, 죽음이 기다리는 흰고래와의 일전을 향해 갈 때는 애처롭게도 읽힌다.

나의 모비딕은 어디 있는가. 아주 가까이, 내 머릿속, 내 가슴속에 살고 있다.

두려워서 바다로 떠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바다로 떠나기 위해 배를 손질하는 중이며,

망망대해 위에서 표류할지언정 그 항해를 떠나겠다고 다짐하고 만다.

나의 모비딕, 나는 너를 죽이러 길을 나선 것이 아니다.

너와 조우하고 싶다.

상상이 되어버린 나의 모비딕.

내가 극복하고 싶고, 넘어서고 싶었던 거대한 파도 같은 관념.

그 끝에서 너를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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