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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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선생이 발견해서 국내에 소개한 소설.

스물한 살 나이의 청년이 쓴 고요하고 적요한 여정.

(줄거리:해설 본문) 일단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18세기 베트남을 향하여 배를 타고 떠난다. 마음 착하고 신앙심 깊은 이 여자 남자들은 미지의 땅을 찾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들은 일 년이 넘게 걸려서 비로소 사이공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그들은 남쪽 지방의 농사꾼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그런데 한편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는 동방으로 떠난 선교사들을 까맣게 잊고 산다. 선교사들은 그동안 모든 것을 버렸고 모든 것을 다시 배웠다. 베트남은 특유의 습기와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그들을 모두 딴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살고 죽는다. 그들은 하느님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155~156페이지

...마침내 그들은 도미니크와 카트린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의 문을 열었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서로 꼭 껴안고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젊은 여자의 젖가슴 위에 손을 얹어놓고 있었다. 여자의 배는 땀과 정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을 했던 것이다. 깊은 정적만이 깃들어 있었다. 군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육체를 서로 나누는 법이 없이 눈이 매섭고 말씨가 공격적인 남자들과 여자들을 찾아내게 될 줄로 기대했던 것이다. 성직자들의 태연하기만 한 모습과 창백함에 군인들은 감동했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떠났다.

145~147페이지

루이16세가 지배하는 베르사유, 외국의 힘을 끌어들여 왕좌를 되찾으려는 베트남의 우옌 씨. 혁명의 전조나 민심 이반 따위는 모르지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선교단을 파견하는 주교. 그들은 총과 대포를 배에 실었으나 그것들은 쓸모없는 것일 뿐이다. 프랑스를 떠난 이후로 콜레라, 기후병 등으로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어느 다정한 마을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농사를 짓고 밭일을 하는 도미니크와 카트린.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에게 호의적이지만, 그것은 종교 때문이 아니라 카트린의 미소가 좋아서이다. 마을을 옮기고 외딴 마을로 들어갈수록 그들은 더욱 고독하고 외롭다고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도 그들을 잊고, 그들도 점차 종교를 잊어간다.

담백한 정적 속에서 두 수도사들은 하나씩 내려두게 되고 최초의 목적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 대신, 인간 본연의 고독을 체험하고 고요하게 스스로를 해방하게 된다.

서구 열강의 침입이 본격화되기 전 시대, 프랑스혁명과 베트남 떠이 썬 당의 난이라는 격변의 시기에 이 두 사람만은 세상으로부터 잊혀가고, 그들도 세상을 잊어 간다. 그 격변의 시대를 덤덤하게 표현하고, 적요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문장이 참 좋았다.

소설의 첫 장을 펼치면 대뜸 민중과 서구 열강에 대한 경계심이 올라오지만,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아니었다고 긴장을 풀게 된다. 물론 중간중간 아시아인의 시각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게 아님을 알기에.. 까트린과 도미니크의 고독한 시선, 그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문학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논픽션이었다면 지루했을 수 있고, 역사로 보았다면 서구 열강의 왜곡이라며 분노했을 것이고, 사회학이었다면 프로파간다라고 맹비난했을 수 있다.

문학이라서, 좋았다. 읽을 만했다. 이 의미 없어 보이는 문장들이 마지막에 어디로 수렴할 것인지 따라가게 되고, 결국 소멸과 해방의 결말에서 그 아름다움에 탄식하고 만다.

김화영 선생이 해설에서 베트남 역사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낯선 베트남 역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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