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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생활 ㅣ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 선선한 바람은 육체를 시원하게 쉬게 하고, 강풍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휩쓸어 버린다. 인간의 마음에도 연약함과 강인함까지 그 사이에 무수한 스펙트럼이 있어 그 마음이 지나온 길이 내가 살아온 시간이 되곤 한다.
이병률의 시는 지나온 것에 마음을 잠시 고여 있게 하다가 어느새 떠나있게 한다. 그 지나온 길을 먹먹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 목적을 지니고 떠난 길에서 극악한 마음을 외면하고 결국 사람의 마음을 나누고 오기도 하는 바람의 결.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풀어지곤 한다.
시의 마지막에는 신형철의 해설이 실렸는데, 그 또한 명문이다. 시인이 구체적인 장면과 심상으로 행간을 이어갔다면 그를 잘 이해한 비평가는 이별과 작별을 구분하여 해설하고, 엇갈림과 묵인이라는 형태로 작별하는 화자를 이해시켜 준다.
시인과 비평가의 글이 모두 좋기만 한 시집이다.
시집을 덮고 묻게 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이별을 짓고 있는가 같은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