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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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사숙하는 영역과 범위는 우주만큼이나 넓다.

작고하신 허수경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 시집이 더욱 그러하다. 모국어를 쓰지 않는 독일에 살았던 시인이 5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생각하고 기록했던 시들이다.

시인은 ‘나’와 ‘당신’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무엇입니까를 물었으며, 시간에 대해, 떠나온 것에 대해, 사이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이 시들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도 없거니와 그저 시인이 고민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나 역시 내게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당신’이라 칭하는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이 내게 지니는 무게는 무엇인가, 나는 여전히 여름 속에 서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수 년 전의 여름이 고대 빙하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인가, 벌레를 털어버리듯 내가 떠나보낸 것들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얼마나 긴 어둠 속에 있어야 나는, 언어로 집을 짓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같은.

내게 시인들은 시를 통해 해답을 일러주기도 했고, 답 없는 끈기와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내 마음속에서 한 꺼풀 더 아래로 내려가라는 가르침을 주기도 했는데. 시인의 이 시집은 내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틈새와 사이, 극과 극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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