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 문화대혁명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 그중에서도 인텔리겐챠 계급을 다룬 소설. 문화혁명을 10년 대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인텔리 계층을 다루고 있다.

위화의 <인생>이 농민계층의 중국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대약진 운동의 고통과 실패를 보여준다면, 다이허우잉은 지식인들이 겪은 문화대혁명의 고통을 그려낸다.

작가 자신이 역사의 격랑 속에서 처절하게 투쟁하고 부르주아 휴머니즘을 주창하는 수정주의자로 낙인찍히고 비난받은 경험이 있다. 격동 속에 무수히 경험하고 관찰했었기에 인간 만상이 핍진하게 그려졌다.

등장인물들은 다양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역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 철저하게 고민하고 실행하는 인물, 회피하는 인물, 패배를 받아들여 사는 문제에만 집중하는 인물, 사상적으로 뛰어나지 않지만 모략을 만들어 반대자를 위협하는 모습 등.

그러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투쟁, 노선투쟁, 문화혁명에 대한 재평가가 아니다.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삶을 보여주고, 인간의 삶은 역사처럼 간략할 수 없으므로 그들이 영혼을 되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마르크스주의가 휴머니즘과 양립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방관자, 기회주의자, 패배를 경험한 현실주의자, 사상적 기반은 약하고 복지 부동하는 당 고위 인사 등의 부정적 인물조차 안쓰러운 마음으로 보게 된다. 그들이 겪은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진실’과 ‘마음 부칠 곳’은 각자 다른 법이다.

이 책의 재미는 긍정적 인물보다 부정적 인물을 관찰하는 데에 있었다.

자신이 상처 준 사람에게 ‘용서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뻔뻔함, 그가 최후에 흘리게 되는 눈물, 잃을 것을 잃고 되찾을 것을 되찾았다고 하는 자오젼후안의 서사는 흥미롭다. 방관자, 배신자, 이기주의자인 자오젼후안은 소설의 시작과 끝을 차지하는데, 이 배치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오젼후안에게는 반성과 심판이 필요했고, 그 이후에는 이런 인물조차 끌어안는 인간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었을지. 휴머니즘을 깊게 고민했던 작가는 이 배치를 통해 더 많은 인간을 끌어 안는 방향을 긍정했다고 본다. 그 인간은 물론, 수용 가능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주인공 쑨위에와 허징후는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은 이들임에도 타인에 대한 마음을 닫지는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자신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지키며 역사와 인민과 관계를 맺고 살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정도로 잃어봤기에 도전에 응전할 수 있으며, 문화대혁명의 상처로 인해 ‘얼굴이 두꺼워져’ 어떤 모욕도 이겨낼 수 있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마다에 격동이 느껴졌다. 우리 시대는 이런 격동과 치열함을 촌스러운 것이라 조소한다. 그러나 인물들의 철저한 고민과 처절한 경험은, 사회는 물론 역사와 종횡으로 관계를 맺은 개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하다.

쑨위에의 15살 딸 한한은, 왜 우리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역사는 어깨에 짐을 지우는지 한탄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돌리고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오늘보다 나은 미래와 관계할 것이라 소망한다. 이 소설이 중국에서 발표된 것이 1980년. 한한이 성장해 89년 천안문 사태를 맞았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한한이, 부모 세대의 고뇌와 삶을 보며 자기 인식과 생각의 개성을 키워나갔다면 천안문 사태에서 자기만의 입장을 가졌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곧 한한의 삶이 되고 개인의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나도 한한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는 것, 역사는 물론 나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나만의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들 격동적인 인물들을 보면서 어떤 순간에든 선택은 나의 몫이지만,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전적으로 내게 있다는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게 된다.

역사의 격동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철저하게 고민하고 그 결과를 삶으로 증명했던 인간을 향해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신영복 선생의 번역이라 더 부드럽게 읽을 수 있었다.

이루어 내려면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돼.

허징후가 쑨위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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