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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2월
평점 :
2009년에 출간되어 절판됐던 책이 11년 만에 다시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입해서 읽었다.
674층 빌딩, 인구 50만 명의 도시국가 빈스토크를 배경으로 연작 소설마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2020년 현재 가택연금 상태인 전직 대통령’과 그 시대가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야만의 시대였다. 물질 만능의 환상은 사회 약자의 희생을 당연시 여겼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연대를 조롱했다. 용산 참사와 크레인에 올라간 노동자의 절규, 북한에 대한 맹목적 적대감, 바보 대통령의 죽음. 국가 권력의 폭력보다 더 참담한 것은 그 모든 비극에 조롱과 물질 만능의 욕망으로 답한 사회의 스피커와 붕괴된 상식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배명훈 작가는 그 시대를 상상력 풍부한 소설로 그려냈다. 소설이 그려낸 이야기는 재기 발랄하다. 재미뿐 아니라 냉소적인 지성과 끈끈한 감정이 느껴져 쉽사리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현실은 비참했지만, 각각의 소설들에서는 체증처럼 얹힌 것들을 상당 부분 해소해 준다. 풍자와 냉소, 때로는 따듯한 인간성을 통해.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 편에서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화자와 등장인물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이 편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찌 보면 이 소설집을 통틀어 가장 올드 한 감성이 그려졌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시대를 지나온 후에 읽으니 가장 감정이 뜨거워지는 작품이었다. 민소가 구조될 것을 기대하게 되는 결말은 안도의 한숨을 자아냈다. 한편, 잉여들의 자발적 행위는 종종 비웃음을 사지만, 이곳에서는 뜨거운 연대로 그려진다.
같은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속속 그 시절을 표현한다. 영화, 드라마, 시, 소설, 미디어 논평 등. 그들은 각기 다른 그릇에 자기들만의 색깔을 담아 수신자에게 다양한 감정을 선사한다.
배명훈 작가가 그려낸 시대는 소설로서 일단 재미있다. 풍성한 상상의 세계를 접할 수 있어 이채롭다. 씁쓸한 그 시절의 욕망을 차가운 시선으로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관점이 좋다.
‘그 시대’는 우리 사회에 트라우마를 남겼는데 그 상처 중 하나가 극단적 편 가르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워>에서는 당신이 만약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방관자만은 아니라고, 그래서 당신을 배척하지 않는다고, 당신의 상황과 판단을 존중한다는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읽기 전에는 작가의 풍성한 상상력을 배우고 싶었지만, 읽은 후에는 다른 입장에 배타적이지 않은 태도에 감동받았다.
배명훈 작가를 SF 작가로 분류하는 평가를 접하는데, 이 책이 SF 장르로 분류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어떤 작가를 규정하는 말들은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타워>는 상상력 풍부한 풍자소설로 읽힌다.
그중에는, 이번에야말로 빈스토크가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판을 막을 의인 열 명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는 위치에 몸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로 한 날. 그렇게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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