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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잘 있습니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평점 :
시인들은 참 깊이 느끼고 생각한다.
같은 단어도 비슷한 상황도, 마음으로 생각해 그것을 가장 적확한 언어로 표현해 낸다는 데서 존경을 느낀다. 이병률 시인의 이 시집이 그랬다.
여러 작품 속의 화자는 안간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비를 피하려고>에서는 원하는 일을 하면 벌이가 안 되는 처지에, 세상의 비를 피하려고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퇴직하는 순간이 그려진다. 비가 오는 날 사무실 짐을 챙겨 나오는데 그것이 바닥에 쏟아지고, 그를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벌레라 생각할 것이라 인식하는 화자가 있다. 남루한 순간에 화자는 자신을 기웃거리는 존재라 자조한다.
이 서글픈 현실을 아등바등 살아감에도, 다른 시들에서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거든>에서는 ‘이번 생애는 한 덩어리의 완전한 혼자가 되어라’고 굳건한 고독을 격려하고,
<내가 쓴 것>에서는 자리를 비운 사이 카페 안 익명의 사람들 덕분에 ‘쓸 수 없어서 시일 때가 있다’는 각성의 순간을 맞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이 온다>를 통해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라며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구아수 폭포 가는 방법>에서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린다.
세상은 기대와 다르게 굴러갈 때가 많고, 대부분의 삶은 쓸쓸하지만 내 마음 한곳을 비워 기다림을 둔다면 사람과 연결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스스로 생의 쓸쓸함도 넉넉하게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마침내 만날 사람에게 나 역시 그 사람이 닫지 못하는 문을 닫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남루한 현실이 결코 초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시집.
안간힘을 내어 살아가는 와중에도 사람의 자리를 남겨두고, 내 스스로는 완전한 혼자가 되어 타인의 상처를 쓰다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격려하는 것만 같다.
시의 화자들은 고독하고 힘겨운데, 시인의 시를 읽으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게 된다.
은근한 힘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시집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 P44
누구나 미래를 빌릴 수는 없지만 과거를 갚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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