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록 이태준 문학전집 15
이태준 지음 / 깊은샘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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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 이태준의 산문집. 제목 ‘무서록’은 순서 없는 기록이란 뜻.

1904년에 태어나 월북하여 1970년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작가 이태준이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쓴 수필들을 모았다.

책 디자인이나 폰트가 옛 느낌이 물씬 풍겨서 사 두고도 책장 넘기기를 꺼리다가 읽었다. 시간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진리가 되는 말이 많고, 타인의 주장을 수용하고 자신의 뜻을 피력하는 세련된 방식에 놀랐다.

작가론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초반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들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소설가로서 고민한 결과와 원고를 잃으면 통곡하고 말 정도로 훌륭한 작품을 쓰길 원했던 장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일제강점기의 글을 읽을 때는 그 시대상에 역사에 짓눌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시대에도 개개인이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과 심성, 세상 민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상허 이태준은 집을 지을 때도 ‘날림’을 참지 못했는데, 이 수필집에서 미학적 완벽성을 추구했던 작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양적 정취를 느끼고 감상하는 시선 또한 은근하다.

여성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만주에서 방문했던 동선당이라는 여성 복지단체를 자세하게 기록했으며 해방 후에는 국내에도 이런 공동체를 설립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상당히 진보적인 견해이다.

해방 후에 최우선의 해결 과제로 완전한 민족해방, 계급해방, 여성해방으로 순서를 정했다. 그가 인식한 문제들은 지금도 해소되지 않은 것들이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해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아직 멀었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이 순서를 뒤집어 해결해 보려는 것은 어떨지. 우선 과제의 순위를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 이 시대를 같이 산다면 얼마나 정갈하고 부드럽게 사회를 진단해주었을지 소용없는 기대가 일었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지 않았으면 읽지 않았을 책인데,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의 소설도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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