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ㅣ 문지 에크리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평점 :
김소연 시인이 깊이 고민한 사랑에 대한 산문집. “사랑을 하고 싶다”라고 했을 때,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로맨스가 주는 설렘을 기대하는 것일까, 사랑 이후 상실의 아픔까지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이런 고민으로 시작된 이 책이 향하는 곳은 ‘나’라는 자아와 사랑함이라는 행위이다.
사랑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오해들, 굳이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방적인 발화와 어긋남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얇은 두께에 쉽게 집어 들었다가 그 생각의 깊이에 압도 당했다.
특히 인상적인 내용은 용서, 용인, 용기에 대한 부분이다. 시인은 말한다. ‘용서’라는 말이 과연 용서하고 싶은 쪽에서 만들어 낸 말일까, 용서받고 싶은 쪽에서 만들어 낸 말일까. 그 의심스러운 정황을 씁쓸하게 생각한다. 용서에 대해서는 종교적인 측면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지적에도 깊이 공감했다. 나는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종교는 불완전한 인간이 안정감을 찾기 위해 구축한 허상이라 생각한다. 그 허상 속에 속죄와 용서라는 판타지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믿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내게 상처 준 타인을 용서한다는 것은 내면 깊이에서 신만이 가능한 것, 신이 명령하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고민하던 사랑과 용서, 체념 등 다방면을 같이 고민해준 작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었다. 섣불리 판단하고 경솔하게 생각하게 될 때, 이 책을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