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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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임금과 조정의 모략에서 잠시 풀려나 백의종군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임진왜란을 종식시킨 노량해전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에서 끝이 난다.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이순신의 내면세계를 정밀하게 따라간다. 2001년에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심사위원들은 세 개의 대극을 발견했다고 한다. 제목에서 보이는 칼과 노래의 대극, 역사와 개인의 대극, 난세를 그리는데 순수한 문체의 힘으로 이야기를 솟구치는 대극이라 했다. 크게 동의하게 되는 말이다.

이순신은 적인 왜구의 죽음을 보면서 생각한다, 죽음은 모두 개별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전쟁 중에 개별성을 획득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안다. 전쟁 중인 자신의 정체성을 적의 적이라고 일단 규정하였으나, 숱한 전투를 치르며 생각한다.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그 개별성의 몸을 어째서 자신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인지 알 수 없으나, 물러설 수 없기에 그는 칼로 적을 벤다.

선조의 무능과 치졸한 마음이야 익히 알고 있는 바라, 다른 서적에선 그의 행태에 분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칼의 노래>에서 우는 임금을 바라보는 이순신의 시선은 가엾다는 것이다. 백성이 공의 앞에서 울 듯이 임금은 신하 앞에 눈물을 흘린다. 그런 미련한 임금을 가엾게 보고, 또한 자신을 겨누고 있는 적은 눈앞의 왜구와 북쪽의 임금임을 정확히 알고 있는 공은 늘 사지를 찾는다.

결국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며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먼저 적들 쪽으로 간다는 사유를 남긴다. 놀랍도록 고귀하고 놀랍도록 공감하게 되는 공의 고뇌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는 것의 무의미함, 자신이 마주하게 되는 무내용함이다. 그것이 작가의 깊은 고뇌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기에, 이 무의미함과 공허를 극복해 내야 하기에, 내가 먼저 적들 쪽으로 향하는 공의 안타까움을 남긴 것이 아닐지 생각했다.

김훈 작가의 문체는 그 뼈대만 남기고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유명하다. 역시나 이번 소설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는데 문체의 힘을 크게 느낀다. 이문열의 문체에서 작가가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반해, 김훈의 문체에서는 탐할 수 없는 우아함과 고귀함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살벌할 정도의 냉정함을 동반하여.

동인문학상 수상 후기에 남겼던 임화의 말을 인용하여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이다’ 이 문장을 아로새기고, 허무와 공허함을 싸워 물리쳐 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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