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당 깊은 집 ㅣ 문지클래식 2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평점 :
초등학교를 나와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소년 길남이 대구 약전골목의 마당 깊은 집에서 보낸 시절을 쓴 자전적 소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이 배경이다. 4남매의 장남인 길남은 엄마와 가족들과 떨어져 살다가 대구로 올라왔는데, 곧장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신문팔이, 신문배달을 하면서 집안의 장남 노릇을 한다. 엄마는 바느질로 4남매를 키우며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할 것을 중요하게 가르친다.
길남은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껴 자신은 데려온 자식일 거라 생각하면서 전후의 소년기를 겪는다. 마당 깊은 집에는 상이군인 가족, 평양에서 피난 온 가족(사상범이 되는 정태의 가족), 경기댁(말 옮기기 좋아하는), 김천댁과 길남네 가족, 그리고 안채 주인 가족이 살고 있다. 주인집은 사업이 불같이 번성하지만, 피난민 셋방살이 사람들은 고된 삶을 살아간다. 얄미운 사람은 있어도 모지락스러운 사람은 없고, 안타까운 사람은 있어도 도와줄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은 없다. 여름 장마철엔 똥물이 들어오는 것을 주인집이 모른 체해도 아래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겨낸다. 엄동설한에 셋집마저 구하기 힘든 시절 주인집이 아래채의 방 하나를 아들에게 줘야겠다 하여 셋방 식구 중 하나가 나가야 한다고 하자, 엄마는 생전 처음 땔감 통나무를 구루마로 주문해 쌓아 놓는다. 통나무를 잔뜩 쌓아놓으면 쉬이 나가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지라는 지략인데, 그나마 다른 두 집도 통나무를 들여놓는다. 형편이 가장 어려운 상이군인(준호 아버지) 네만이 땔감도 쌓지 못하고 속 타는 시절을 보낸다. 제비뽑기에서 진 엄마는 바느질 일감이 떨어질까 무서워 김천댁이 떠난 가겟방을 어렵게 웃돈 얹어 주고 살 수 있게 된다. 엄마는 늘 더러운 세월이라 한다. 만두 맛을 보게 해준 문자 이모의 자살, 막내 길수의 안타까운 죽음, 길남의 가출, 어른스러운 동갑내기 한주 등의 시절을 보낸 그 시절을 기억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정태(평양댁네 폐병쟁이 아들)의 꼬박 20년 수감생활과 출소 후 제정된 사회안전법 때문에 다시 감호소에 수감되는 미전향 장기수에 대한 이야기로 맺음 한다.
드라마로 방송되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현재까지도 꽤 많은 책이 인쇄되고 보급되었다. 전후의 속 깊은 아이와 아이들만 생각하는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시절에도 꿈과 희망과 갈등을 겪는 생생한 소년기를 그리고 있다. 생존에 직면한 어머니라는 인간을 그린 것도 인상적이다.
과하지 않은 감정으로, 그 시절 어려움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소식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진한 아쉬움이 여운으로 남는 책이다. 마당 깊은 집에 살던 사람들은 결국 주인집의 양옥집 신축으로 모두 이사를 가야 했고, 그들의 삶은 주인집의 흙더미에 묻히고, 그 기반 위에 주인집은 신축되었다. 그 시절을 묻어버린 누군가, 그 세월 속에 묻어있을 누군가들이 꼭 행복해졌기를 바라며 읽게 되는 책이다.